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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Ⅵ)

박지원 0 1,001 2015.06.24 15:39
오후 네 시. 눈을 떴다. 천둥이 치고 있었고, 하늘은 말라있었다. 정말 바짝 마른 파란 하늘 위에 구름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건조하게 붙어있었다. 오래된 페인트가 갈라지듯, 쿵쿵 하는 소리와 함께 공간의 이곳저곳이 순간적으로 끊어졌다. 그리고, 흔들렸다.

아주 오래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육지에 온 뱃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이유는 지상에서 똑바로 걷기 위함이라고. 정말 술을 마셔서 흔들거림을 합리화해야할 만큼 사방이 기우뚱기우뚱했다. 누군가한테 맞은 듯한 근육을 들어 신발을 신고 텐트 밖으로 나왔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우리는, 흔들거리는 세상을 아장아장 밟아냈다.

Whakahoro는 드넓은 초원 같은 구릉이었다. 그곳에 정박하는 배가 적은 건지, N과 나, 그리고 우리와 동선은 같지만 기대와 달리 별 왕래는 없는 아일랜드 커플. 정말 딱 두 팀 뿐이었다. 그러니까 그들의 회색 텐트와 우리의 노란 텐트, 그리고 가끔씩 어딘가에서 툭 튀어나오는 토끼들, 뜬금없는 카페, 잡초가 무성한 농장터들이 우리가 본 Whakahoro의 전부였다. 날벼락이 치고 있는 마른 하늘과 초록색. 생각해보면 그렇다. 갓 태어난 아기의 시선으로 보면 모든 것이 색깔을 경계선으로 뿌옇게 보인다고 한다. 그 유아의 시기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줄어드는- 인지 혹은 인식 이전의 시선을 가진 고귀한 시간인 것이다. 분명 우리는 우리가 밟고 있는 것이 잔디인 것을 알고, 우리 위에 떠 있는 것이 하늘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치 인식되지 않은 것처럼, 우리의 눈에 쏟아져 들어오는 듯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공격적이지도 않고, 웅장하게 꾸며낸 앵글도 아니다. 그냥 그 자체가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그러했다.

그건 그렇다치고, 우리는 첫 숙박지에서처럼 강물을 길어다먹고 싶지는 않았다. 당장 달려가 물부터 확인했다. 1960년대 흑백사진에서나 보던 펌프를 누르고 누르니, 무, 무, 물이다. 물이 나왔다. 참 다행이었다. 우선 배에서 가지고 오지 않은 음식을 가져오기로 하고 배를 정박해둔 곳으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에서 만난, 차갑고 맑은 물이 나뭇잎 끝에서 떨어지는 천연 샘에서 목을 축이고 배를 확인했다. 난파되지 않은 것이 신기할 뿐인 우리의 Explorer 31호는 뭍 위에 얌전히 있었다.

이것저것 가지고 올라가 텐트 주변에 놓은 후, 카페에 한 번 가보기로 했다. 카페에 가는 길 모퉁이에는, 우리가 텐트를 친 곳이 옛날에는 말 목장이었다는 것을 기록해두고 있었다. 기록은 소중하다. 우리는 오늘 밤 오래된 말발굽 위에서 자는 것이다. 카페에 도착했다. “Blue Duck Cafe”였다. 파란 오리라니. 별로 할 말이 없는 카페이름이었다. 그 안에는 카드가 가능했고, 심지어 바나나망고스무디가 있었다. 바나나 망고스무디.. 아름다운 이름이었다. 아까는 물 나온다고 좋아했는데. 역시 우리 커플도 문명에 찌든 어쩔수 없는 현대인들인 것이다. 문명에 찌든 커플이 바나나망고스무디를 각자의 손에 들고 카페 바깥에 설치된 데크의 벤치에 앉았다. 풍경을 보다가 지도를 보았다. 우리는 이미 강 상류로부터 57km를 내려와 있었다. 총 145km의 여정. 이제 88km의 뱃길이 남은 것이다. 아, 이제는 정말.. 눕고 싶었다. 마침 해먹이 있길래 그 위에 누웠다. 세상은 계속 울렁거리며 흔들거리고 있었다.

흔들거리는 세상을 합리화하기 위해 N과 함께 가지고 온 와인 반병을 마시며 밥과 미트볼을 먹었다. Whakahoro를 바라보았다. 멋진 곳이었다. 이 곳에 우리는 함께 왔다. 핸드폰도 지도도 훌훌 버리며 왔다. 현대인들이여, 불안해말라. 만일 당신이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면, 핸드폰이 당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 당신이 핸드폰을 버린 것이다. 또한 지도가 없다고 해서 길이 안 보이는 것이 아니다.

지는 노을 Full Shot. N과 지원이 서로 펌프질을 해주며 양치질을 하고 있다. 펌프질을 하는 손 insert. 서로 3일 만에 감는 머리들인지라 흙물이 나온다. N이 한 손으로는 펌프질을 해주며 한 손으로는 지원의 머리를 감겨준다. 웃음소리. 지는 노을 사이로 구멍이 나듯, 고른 숨을 쉬는 별빛들 Full shot.

그리고 우리는 텐트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 때,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산 속이라 그런지 날씨가 정말 변화무쌍했다. 배를 약간 걱정했지만, 곤히 잠든 N을 보니 나도 잠이 쏟아져 잠이 들었다. 그리고 깼다. 포썸의 울음소리.. 정체 모를 동물들이 텐트 근처를 배회하는 소리, 텐트 바로 옆에 자리를 잡았는지 계속해서 숨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얇은 섬유소재를 사이에 두고 포유류와 포유류가 나란히 누워있는 것이었다. 금방이라도 천을 찢을 듯이 부딪히는 빗소리와 두두두두, 짐승이 달리는 소리들.

Whakahoro는, 그야말로 야생을 가진 밤을 품고 온 몸으로 비를 맞고 있었다. 인간은 자연을 빌린다. 그 누구의 허락도 없이 말이다. 그저 허락처럼 보이게끔 만든, 절차만이 존재한다.

소란했던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 그러니까 강 위에서의 셋째 날 아침이었다. 텐트 주변에는 수많은 똥들이 놓여져 있었다. 잔뜩 부은 눈을 가진 우리들은 똥을 피하며 야외 테이블로 걸어갔다. 아장아장. 토스트를 굽고, 사온 고구마를 쪄먹었다. 날씨는 어제와 달리, 또다시 건조해져있었다. 저편의 산등성이에는 긴 구름이 옅게 붓질을 해놓았다.

멍했지만 다시 노를 저을 생각에 약간 긴장된 마음으로 아침을 먹은 우리는, 문명에 대한 미련으로 인해 다시 한번 카페를 들렀다가 출항(?)하기로 했다. 그 전에 몇 개의 짐을 우선 배에 실어놓기 위해 정박지로 향했다. 곧 이은 충격. 어제는 분명히 뭍에 있던 배가, 이제는 거친 물살 위에 둥둥 떠 있었다.

우리는 뱃머리의 끈을 잡아당겨 조금 더 단단히 묶은 후, 남은 짐을 가져오기 위해 허둥지둥 캠프사이트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갔다. 배 아래의 물은 심지어 아까보다 더 불어있었다.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뭍도 없어져 있었다. 옆에 구경을 나오신 듯한 주민분이 호탕하게 웃으시며- 배는 완전히 육지 위로 두는게 안전하다고 하셨다. 우리는 얼빠진 표정으로 허둥지둥 짐을 배에 싣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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