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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기(Ⅵ)- 발매 그리고 사기

박지원 0 1,109 2015.05.27 10:24
초심을 찾기까지 아무런 곡을 작업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었다. 12월, 1월, 2월이 지나갔다. 긴 크리스마스 휴가와 왕가누이 여행, 부모님의 방문 등 그 사이에 많고 작은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2월 중순 무렵부터 다시 마음을 다잡고, 초심이었던 “될 대로 되라”의 심정으로 돌아가 앨범을 각 기획사로 돌리기 시작했다.

뮤직비디오와 함께 첨부한 여섯 개의 곡들은, 거짓말처럼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모두 인디계의 오랜 불황으로 인해 운운하며 다른 기획사 혹은 엔터테인먼트로 보내보라고 했다. 막상 보내보면 아무런 메아리도 돌아오지 않았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넘어가겠다. 돈을 노리고 쓴 것도 아니요, 돈을 벌 만한 곡도 아니다. 내가 듣기엔 허접함과 겉핥기식의 랩과 구성이 횡횡하는 곡들이었고, 작곡을 막 시작한 풋내기의 앨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도 어찌되었든 내 맘에는 든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한 기획사로부터나마 인정받았던 것은, 그런 풋내나는 솔직함과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느낌이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왔기 때문이 아닐까 회상한다. 어찌되었든 음악은 주관적인 것이기에, 개성을 인정해주는 개개인의 힘만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다행이었던 것은 현장에서 직접 사운드를 만지는 친구가 믹싱과 마스터링을 만져주었기에 기본적인 음질 등의 퀄리티는 상당히 양호한 편이었다.

그렇게 거절받기를 수 십차례, 마침내 발매를 해주겠다는 회사가 나타났다.

거짓말처럼 발매가 되었고, 거짓말처럼 그 어떤 반응도 없었다.

나는 적어도 “아싸 1빠염ㅋㅋㅋ” 같은 의미없는 반응이라도 달릴 것을 기대했었다. 정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프로모션을 할 수 없었던 작은 회사였던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어떤 반응도 보일 수 없던 음악이 문제 아니었을까. 아니야, 그래도 실험적인 음악인데 꽤 들어주는 사람이 있지 않았을까?

자문자답의 혼란과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는 혼자만의 자기만족, 3개월 뒤 정산이 이루어진다는 흑심 속에 발매일 3월 13일 이후에는 한참동안 잠을 못 이뤘다. 페이스북 같은 것에 올려보기도 하고, 심지어 뉴월드 게시판에 붙이기도 하였다. “Search in Youtube: Electronic Bacon” 같은 것들을 말이다.

가수(라고 하긴 참 부끄럽다)가 컨셉을 따라간다는 말은 사실이었던 걸까. 앨범의 총 컨셉 넌센스를 따라 내 마음도 실은 넌센스였다. 정말 그저, 순수하게- 앨범 하나 내보자고 기획했던 일이 어느덧 반응이 없다고 심심해하고, 정산을 기대하게 된다. 물론 딱히 돈을 기대한 것은 정말 아니었다. 다만 몇명이 내 음악을 들었을까. (정산서에 다 기재된다) 몇 명이 들었길래 리플이 많이 없을까에 대한 궁금증이자 호기심이었다. 그러나 실은, 이 놈의 “넌센스”는 끝까지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3월이 가기 전에 저작권 협회에 등록을 했다. 그리고 4월 8일, 나의 첫 앨범<문어XPBC : Electronic Bacon>을 내주었던 회사(이하 A사)의 대표는 잠적을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사기였다. 내 인생 첫 번째 사기였고, 정말 넌센스스러운 사기였다. 남아있는 지면이 적으니 간단히 말하자면, 그 곳의 대표가 다른 음반제작사(이하 B사)에게 돈을 빌렸다. 나 뿐만이 아닌 그 곳에서 앨범을 낸 모든 사람들의 음악을 담보로. 그리고 B사는 내 앨범의 유통사가 되었다. 나는 유통사와 내가 계약한 회사의 이름이 다르기에 단순히 자회사 혹은 하청이겠거니 하고 넘겼었다. 알고보니 교묘하게 이중계약이 된 셈이었고, 아티스트와 회사가 각각 6:4로 나눌 것이라 하던 비율은 A사에서 수수료를 떼고, B사에서도 수수료를 떼가는 것을 명시하지 않은 비율이었다. 그러다가 A사의 대표는 도망을 가고, 우리 아티스트들의 음악에 대한 권리를 담보로 쥐고 있는 B사는 “피해액을 회수할 때까지” 우리 음악에 대한 권리를 풀어주지 않을 것이라 언론에 으름장을 놓았다. 다시 말해, 정산 받기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가난한 인디아티스트들인지라 고소를 할 수도 없고, 고소를 한다고 해도 단체소송이기에 변호사 선임비가 저작권료보다 더 많이 든다. 분명 좋은 선례를 남기기 위해선 고소를 해서라도 우리의 당연한 권리를 찾아야 마땅한 일이지만, 그럴 만한 돈이 있는 뮤지션들이, 나를 포함해서, 없었다. 그 점을 악용한 파렴치한 사기에, 앨범 발매 한 달도 안 되어 나는 멀뚱히 피해자가 되고 말았다.

내가 기분이 나쁜 것은 정산을 못 받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의 동의도 없이- 그것도 가난한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담보로 돈 거래가 오갔다는 사실이 굉장히 기분이 나쁘다. 정말 몇 안 되는 돈 모으고 모아 만든, 다른 사람 인생의 소중한 의미를 사고 이용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도 그냥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왜 그랬을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정신 나간 놈이라고 밖에 생각이 되지 않았다. 논리적으로 볼 때, 정신이 나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짓인 것이다. 분명 저작권료로 먹고 음악하는 분들도 계실 텐데 말이다, 그게 뭐하는 짓인지.

내 첫 앨범은, 나의 작업기는 정말 넌센스스럽게, 고소조차 못할 정도의 넌센스로 막을 내렸다. 흔적을 남기긴 했다. 배운 점도 많았다. 다만,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 든다.

다음번엔 좀 더 잘해야겠다. (사족이지만, 랩은 안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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