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 - 잊어도 되는 것과 잊으면 안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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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 - 잊어도 되는 것과 잊으면 안 되는 것

0 개 2,115 한얼
건망증이 심한 편이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거나 조금만 산만해지면 뭐든지 간에 금방 잊어버려서 곤란할 때가 많다. 그렇다 보니 이래저래 무얼 하든, 무슨 말을 듣건 간에 항상 바짝 감각을 곤두세우고 새겨듣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는 바람에 신경이 늘 곤두서게 되고, 그래서 쉬이 피곤해진다.

좋아하는 것에 관련된 정보는 거의 절대로 잊지 않는 편이지만 (한 때는 별명이 ‘걸어다니는 백과사전’ 이기도 했었다), 반대로 관심이 없는 건 좀 심하게 쉽게 잊어버린다. 이쯤 되면 일부러 그러는 거지? 싶을 정도로. 양심 불량은 아닌가, 싶어 스스로의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하게 되는 것이다. 미안합니다, 고의로 그러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망각. 옛날의 모든 부끄러운 일들도 잊지 못하게 되어도 좋으니, 모든 걸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가끔 바라곤 한다.

주변인들의 말마따나, 뭐든지 그 자리에서 듣고 그 자리에서 까먹어버리면 나야 편하지만 정작 괴로운 건 다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해야 하고, 일을 부탁하면 앗차, 까먹어 버렸다! 라며 대답해버리는 데에야, 웬만한 사람들은 복장이 터지겠지.

그래서, 요즘엔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한 번만 말해도 이해하고 기억하려고 애쓰는 것. 그 방법 중 하나는 상대의 말이 끝나면 바로 따라서 똑같이 반복해 말하는 것이다. 마치 군대에서처럼. 좀 바보 같아 보이긴 해도 의외로 확실히 기억에 남길 수 있는 요령이다.

아니면, 부탁을 받을 경우엔 받은 직후 바로 그 맡은 일을 해치워버리는 게 있다. 그러면 기억도 하지 않아도 되고, 상대는 일이 빨리 처리되니 기쁘겠지. 조금 번거롭긴 해도.

내가 가장 약한 건 사람을 기억하는 일이다. 얼굴과 이름을 매칭시키는 것. 자주 보거나 특별히 인상 깊은 사람이 아니면 목소리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서, 본의 아니게 무례하게 보이는 일이 다반사다. 그럴 땐 식은땀까지 줄줄 흐른다.

전화를 싫어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을 꺼리게 된 건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 앞에만 서면 긴장하게 되어버리는데, 누군들 만나고 싶을까.

이런 나의 건망증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이름을 정확히 불러주거나 목소리만 듣고도 누구인지 알아차리면 매우 기뻐한다. 드디어 기억해줬구나! 라면서. 그럴 땐 매우 쑥스럽고, 조금 뿌듯하고, 그리고 아주 많이 부끄럽다. 당연한 일인데도 나한텐 그게 당연하지 못하고, 어느새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인식되어 있다는 것이.

가끔 성격이 안 좋거나 성질 급한 사람들은 화까지 내기도 한다. 그럴 때면 무척 미안하고 당혹스럽다. 나도 원해서 이렇게 된 건 아닌데, 하고.

나 개인적으로는,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건 조금은 섭섭하지만 그렇게 마음 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내 이름을 두 번 세 번 물어보아도 아무렇지도 않게 답해준다. 어차피 그렇게 기억되고 싶지도 않고.

자기가 하는 말이든 지시든, 아니면 본인 자신이든 간에, 남에게 잊혀지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건 인간만이 가진 특성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필멸성이 무의식 중에 그 무엇보다도 깊이 각인되어 있기에,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남기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 인간성이. 비록 사람의 기억이란 모래보다도 더 지워지기 쉬운 것이라고 해도.

웃기는 건, 난 사람보단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을 더 잘 기억하고, 정작 그네들은 자기들이 기억되던 말던 신경도 쓰지 않는단 것일까. 그런 점에서 좀 더 자유로운 동물들의 기억에 대한 지각이 부러울 따름이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기억하고, 또 잊어버릴지 난 가늠도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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