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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뼘

0 개 1,613 박지원
새벽 6시 30분에 일을 시작했다. 오후 2시쯤 퇴근해서 밥을 먹고 멍 때리다가 친구가 의뢰한 영화음악 작업을 했다. 작업을 했다가 밥을 먹었다가 작업을 했다가 잠을 잤다.

조금 지친 건지 몸살이 났다. 편도가 발효된 빵처럼 부풀어 올랐고 3일 내내 열이 계속 오르내리고 땀을 흘렸다. 낡은 소파베드의 중심이 내려앉도록 내내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출근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약간 급하게 그 주에 주말의 여행을 계획했다.

금요일 저녁에 갔다가 일요일 오후에 오는 여행을 계획했다. 목적지는 넬슨, 경유지는 픽턴이었다. 웰링턴에서 2년 반을 살면서 이제 겨우 세 번째 가는 남섬 여행이었다. 여행을 좋아함에도 그리 많이 가지 못했던 이유는, 아마 첫 번째로는 돈이 문제였겠지만, 무엇보다도 한곳에 일주일이고 이주일이고 오래 머무는 것을 좋아하는 여행 취향 탓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는 11일을 혼자 있었다. 지진이 났었던 곳을 중심으로 세워진 출입금지 철책주변을 뱅글뱅글 돌았다)

배가 출항했다. 오후 6시 30분. 비가 내리고 있었고 파도는 조금 높게 고저를 반복했지만, 청색 소파에 몸을 깊숙이 파묻은 채 잠이 들어버렸다. 세 시간, 깜깜해진 바다에서 들리는 옅은 꿈결 같은 소리가 차츰 분명해지고, 몸을 일으켜 정박한 배에서 내렸다. 픽턴이었다. 나에게 픽턴은 언제와도 좋은 공기를 가지고 있다. 오가는 관광객들과 친절한 현지 사람들. 깔끔하고 낮은 건물들. 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소도시의 정석적 표본. 사람들을 어딘가로 조용히 안내할 것만 같은 가느다란 손짓모양의 공기가 잠잠히 고여있는 도시다.

오후 10시. 잠을 자고 일어나 오전 9시. 레스토랑에서 비싸지만 근사한 아침을 먹고 12시 30분에 넬슨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농장으로서의 넬슨은 들어본 적은 있었다. 여행을 계획하기 전 넬슨에 대한 정보는 전무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 2시간 동안 창밖을 바라보았다. 꽤 가파른 경사와 굴곡의 산을 오르는 차체. 몸을 구부릴 수 없는 뱀이 아등바등 구부러진 길을 따라 가는 것 같았다. 어떤 곳은 가드레일도 없어서 산 저 아래를 더욱 까마득하고도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뉴질랜드의 지리적 중심이 있다는 넬슨을 가는 길은 까마득하고도 분명했다.

넬슨에 도착했다. 백패커에 짐을 내려놓은 후 거리로 나갔다. 날씨가 궂기로 소문난 웰링턴과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산책이었다. 따뜻미지근한 바람이 조그맣게 어깨를 누르고 펴고감을 당분간 기억할 만큼의 그런 온도였다. 냇가 비슷한 강을 주욱 걷다가 아주 오래 전에 만들었다는 다리 하나를 건넜다. 넓은 잔디밭에서 크리켓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지나쳐 나무들이 만들어놓은 그림자 숲의 언덕을 숨가쁘게 올랐다. 예상보다 높았고, 멋도 모르고 멋을 안다고 스니커즈를 신고 온 내 발은 이내 벌겋게 달아올라 뒤꿈치를 툴툴거렸다.

성난 발을 다독이기 위해 신발을 벗고 올라선 뉴질랜드의 중심은, 정말 “아름답다”는 교과서적 표현이 적합하게 들어맞는 곳이었다. 앞으로는 바다가 보였고 뒤로는 산이 보였다. 바다 앞쪽으로는 가지각색 낮은 지붕들이 태양 아래 머물고 있었고, 지붕들 앞쪽으로는 녹색 풀빛 들이 반짝반짝 흔들리고 있었다. 콤파스의 바늘 같은 것을 곧게 땅을 향해 꽂을 듯이 띄어놓은 석조구조물이 정상 가운데에 있었다. 41°30′S 172°50′E.

오후 5시. 한참을 있다가 내려왔다. 다음 행선지는 The Boat Shed Cafe(이하 카페) 였다. 산을 올랐더니 배가 고파서 우선 피쉬앤칩스를 먹었다. 넬슨 중심가를 구경하는데 사람을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여전히 잔잔한 바람과 도시의 엠비언스만이 거리를 떠돌았다.

다음 행선지인 카페의 위치를 확인하지 않고 온 탓에 걷기에는 너무 먼 거리라는 것을 깨닫고 차가 없음을 절망하던 차에 거짓말처럼 택시가 나타났다. 두런두런. 택시기사 아저씨는 2년 전에 술을 진탕 마신 후 더 이상 술을 마시지 못한다고 했다. 두런두런. 나는 당연히 남한에서 왔다고 했다. 우리는 웃었다. 거짓말 같은 택시의 공기가 술처럼 좋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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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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