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 다녀왔다.
일전에도 말한 것 같지만, 집을 떠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내 침대가 아닌 곳에선 잠을 이루지도 못하거니와, 낯선 분위기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익숙해지고 싶어도, 내 몸은 어차피 잠깐만 머물 것임을 아는 것처럼 익숙해지길 거부한다. 어렸을 땐 그런 느낌은 흐릿하게만 들었는데, 점점 심하고 뚜렷해져만 간다.
그래도, 그 모든 것을 이겨낼 만큼 바다가 보고 싶긴 했던 모양이다. 닷새 전부터 가족들에게 여행을 다녀올 예정임을 설명하고, 구체적인 계획과 - 혹시 모르니 - 혼자 가는 건 아니니 걱정 말라고 신신당부한 후, 날씨가 춥다거나 먹을 것을 충분히 챙겨가라는 무수한 조언들을 들어가며 가방을 꾸렸다 (한 번쯤은 아무에게도 말 않고 그냥 훌쩍 떠나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 같긴 한데, 아직 그럴 만큼의 용기는 없는 것 같다. 아쉬운 일이다).
함께 가기로 한 사촌 언니와 함께 고속 버스에 몸을 싣고 출발했다. 한국의 어느 곳이 바다로 유명한 진 모르겠지만, 아는 친구의 부모님이 동해 바닷가에 펜션을 운영하신다기에 그곳으로 결정했다. 사진으로 보았을 때는 상당히 깔끔하고 따스해 보이는 곳이었다. 이름도 예뻤다. ‘솔바다’. 어쩌면 그 이름 때문에 가기로 결정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름이 예쁜 것에 몹시 약하므로.
그러나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길은 무척 고역이었다. 나는 차멀미를 하고, 한파주의보니 뭐니 해서 잔뜩 껴입고 온 탓에 땀까지 비오 듯 흘렸기 때문이다. 더위는 멀미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비몽사몽, 반쯤 정신을 놓은 채 오지도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하면서 길고 긴 세 시간을 버텨야 했다.
그래도 도착한 바닷가는 그 모든 것을 보상해주기 충분했다. 때마침 춥기는 (정말?) 해도 날씨는 정말 눈이 부시게 맑았고, 그래서 뉴질랜드의 하늘을 연상시키는 맑은 빛깔에 감탄부터 나왔다. 그 다음 본 바닷물은 냉정하리만치 시퍼랬다. 조금 놀라고 말았다. 뉴질랜드의 바다가 따뜻한 느낌이라면 이곳의 바다는 무척 싸늘하고 추워 보였다. 발을 담가 보니 의외로 또 그렇지도 않았지만.
발이 유난히 푹푹 빠지는 모래를 맨발로 걷는 것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다. 정말 오랜만에 마음의 진정한 여유를 느끼며 바닷가에 비치된 흔들의자에 앉아보기도 했다. 물론 나는 평소에도 무척 여유롭다는 소리를 자주 듣지만, 실제로 내가 속으로 얼마나 많은 안달과 걱정을 끌어안고 있는 지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리고 난 그 편이 좋다. 괜한 귀찮음이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바닷가에서 나는 짧게나마 정말로 자유로웠다. 머릿속이 깨끗하게 포맷된 것처럼, 그야말로 저 하늘처럼 광활하니 푸르고 모래사장처럼 새하앴다. 아, 이런 걸 느끼려고 사람들은 일부러 비싼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휴가를 떠나는 것이구나. 그제서야 이해했다. 여행의 참맛이란 것을.
새파란 스파까지 있었던 펜션 덕에, 밤에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고속도로에서 느꼈던 피로를 풀어낼 수 있었다. 아마도 두어 시간은 족히 물 속에 들어가 있었던 것 같다. 그 안에서 김으로 부옇게 변한 창 너머로 밤바다를 감상했다.
그다지 감상적이지 못한 나도 이렇게 센티멘털해지다니, 여행의 위력은 과연 대단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