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여행에서 이런 저런 재미 있는 에피소드들이 있었지만 - 고작 1박 2일 사이에 그렇게 많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 그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여행 첫날의 저녁식사였다.
부산의 특산품이라던가 유명한 음식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나는 친구에게 국적 상관 없이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친구는 기꺼이 응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한 작은 인도 음식점이었다 (안타깝게도 가게 이름은 까먹었다). 골목에 있어서 핸드폰 네비게이션으로 돌고 돌아 간신히 찾아냈다.
음식은 맛있었지만, 정작 인상 깊었던 건 음식보단 그곳의 직원이었다. 혼자서 웨이터, 캐셔, 홀 지배인 역할을 모두 겸하고 있던 그는 파키스탄에서 왔다고 했고, 원래는 어느 작은 IT회사에서 일했다고 했다. 영어가 무척 능숙했다. 나 또한 반가움에 영어로 말을 걸자, ‘대화가 통하는 사람은 정말 오랜만’ 이라며 신나게 떠들었다. 계산을 할 때에도 거의 5분을 붙잡혀 있었지만 썩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외국인끼리의 동질감 때문일까. 물론 옆에 있던 친구가 영어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나를 새삼 존경심 담긴(?) 눈빛으로 보았다는 점도 한몫 했겠지만.
그 다음날은 좀 더 평온했다. 익숙지 않은 곳에선 잠을 통 이루지 못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습성 때문에 몸은 피곤했지만 정신은 멀쩡했달까. 부산의 명소라는 자갈치 시장을 구경시켜주겠다고 친구가 나섰다. 나는 잔뜩 들떴다.
오후 1시, 자비 없이 쏟아지는 땡볕 아래서 돌아다닌 자갈치 시장의 인상은……그다지 깊지는 못했다. 가뜩이나 더웠던 날씨 탓일까, 생선 비린내며 온갖 냄새가 더욱 진하게 느껴졌다. 가뜩이나 예민한 후각엔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사람, 사람, 사람! 그 어마어마한 인파라니. 사람이란 존재가 이렇게 파리마냥 한꺼번에 와르르 몰려다닐 수 있단 것에 징그럽기까지 했다. 최대한 그네들과 닿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도 진력일진대, 환경까지 이러니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반도 제대로 구경하지 못하고 나는 친구를 따라 털레털레 걸음을 옮기는 수밖에 없었다. 정오 때까지 내리자는 바람에 아침도 점심도 구경하지 못한 배가 아파왔다.
그 다음에 향한 곳은 카페 거리였다. 정말 유감스럽게도, 그곳에 도달했을 때쯤엔 이미 반쯤 좀비가 되어 있던 상태였으므로 정확한 위치나 지명 같은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애초에 그런 것에 잘 신경 안 쓰기도 하고). 그저 그곳에서 정말 맛있는 닭요리를 먹고, 그 다음 거리를 돌아다니며 구경하다가 크레페를 먹으러 카페로 들어갔다는 정도. 마침 손님도 없고, 에어컨은 시원했기에 기차를 타야 할 시간까지 눌러앉아 여유를 만끽했다.
이렇게 늘어놓으면 정말 별 것 없어 보일 것이다. 뭔가 특산품 같은 걸 먹은 것도 아니고, 딱히 명소에 간 것도 아니다. 나는 낯선 여행지에서 익숙한 일을 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가령 영화관에 간다던가, 컴퓨터 게임을 한다던가, 내 동네에도 있는 백화점에서 쇼핑을 한다던가. ‘여기까지 와서 왜?’ 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궁하지만, 아마도 약간의 반항미와 더불어 자기 확인을 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나는 이곳에 있지만 이곳에 속해 있진 않다. 나는 나의 장소에, 나만이 있을 곳이 있음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증명하기 위해서.
돌아오는 길은 편안하게 좌석에 앉아서 올 수 있음에 감사하며, 나는 세 시간 동안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