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이나 지금이나 아이들이 점점 자라면서 고민에 휩싸이는 부모들이 많은데 특별히 아들에 대해서는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하는 부모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요즘의 부모들은 다르다 해도 아무래도 자녀들의 교육에는 어머니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순종적이고 말 잘 듣는 아들들이야 어머니가 교육을 시키는데 있어서 염려가 없지만 그렇지 않게 되면 같은 성이 아닌 여자인 어머니들은 자신이 경험해 보지 않았던 남자들의 사고방식이나 태도와 행동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당황하는 경우들이 생기게 된다.
그렇다고 아버지들이 같은 성인 아들들의 문제들을 잘 다루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는데 예전의 부모들은 권위적이었기 때문에 어려서 대화를 통해 소통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아버지들 또한 어려움을 겪기는 매 한가지여서 고민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 궁금해 하는 부분이 어느 선까지 허용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친구들과의 만남이던 게임이던 이성과의 문제이던 취미생활이던 학교 활동이던 아들들이 요구하는 사항들 앞에서 부모들은 갈팡지팡한다. 너무 안 된다 하면 어긋나갈 것 같고 또 해달라고 하는 대로 내버려두면 학업에 지장이 있고 …조금 허용을 해주다가 지나친 것 같아서 태클을 걸면 자신의 친구들은 다 허용이 되는데 자신만 너무 지나치게 간섭한다고 문을 쾅 닫고 들어가버리는 아들 앞에서 암담하기 그지 없다. 공부 좀 하라고 방문을 열고 들여다 보면 알아서 한다고 나를 못 믿느냐는 아들 앞에서 그래 못 믿겠다 할 수 없어서 알았다 하고 나오고 영화나 유투브를 보고 있어 한마디 하면 스트레스 받는다고 하니 참으로 어렵다 어려워 싶은 것이 십대의 아들들을 둔 부모이다. 좀 더 용감한 부모들은 마음대로 큰소리쳐보지만 그러다 반항하고 역효과 날까 염려하는 것이 부모마음이고 더 용감한 부모들은 매일 싸움을 할 수 밖에 없고 악화일로로 가는 지름길을 선택하는 결과를 맛보게 된다.
필자가 오래 전 헤럴드지에서 본 칼럼에서 어느 영국의 명문고등학교에서 여학생들의 성적이 늘 더 우수하고 몇 년 동안 남학생들이 뒤쳐지면서 여러 가지 방법들을 모색해 보다가 남학생들의 시험시간을 10분을 더 늘려주기로 하면서 남학생들의 성적이 향상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성적이 오르면서 자신감이 증가하고 공부에 더 집중하게 되었고 어느 정도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자 이번엔 서서히 늘린 시험시간을 줄여나가서 마지막엔 여학생들과 동일한 시간으로 돌아왔는데도 성적이 떨어지지 않고 유지를 해나갔다는 것이다. 그 글의 결론은 남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건 학부모들에게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보다 더 많이 인내하면서 기다려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수 많은 십대 청소년들을 만나보면서 같은 또래라도 어리면 어릴수록 여학생들이 훨씬 성숙하고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20대에 다다르면 남학생들의 성숙한 정도가 여학생들을 따라가면서 여학생들에게서 볼 수 없는 장점들을 갖추고 성숙해 가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결국은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되는데 그 과정에 있어서 아들들은 미숙함으로 인해 쉽게 부딪치고 요령이 없어서 더 사서 고생하면서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게 된다.
그러나 아들들은 그렇게 해서 넘어지고 쓰러지고 좌충우돌하면서 경험하면서 깨닫고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굳이 적나라하게 확인할 기회를 가져야만 인정하고 돌이키고 다른 길로 접어들 수 있게 된다. 그러기에 종종 고민하는 부모님들에게 아들들이 다른 길로 가려할 때, 길을 읽고 헤매이면서 너무 고단할 때 돌아갈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해준다. 즉 좋은 관계를 맺는데 집중해야 십대인 내 아들을 위한 최고의 부모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기다리고 인내할 수 있는 사랑이 바로 바로 주고 응답하는 사랑보다 더 깊이를 요구한다. 아들들을 살리는 부모는 그 만큼 성숙한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