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곳 중에 우주가 있다.
우주의 어디? 라고 물으면 대답이 조금은 궁해지고 만다. 나폴리, 라던가 리스본, 처럼 딱히 명칭이 정해져 있는 곳에 가고 싶은 것이라기보단 지구 자체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욕망이기 때문이다. 이 (가끔은 애정을 담아) 지긋지긋한 행성에서 도망쳐버리고 싶다는 욕망.
나는 하늘을 아주 좋아한다. 그렇기에 그 너머의 세상을 그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끝없이 밤만 계속되는 세상, 무방비하게 나가버리면 더할 나위 없이 -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 위험하다 못해 무자비하기까지 한 대기. 빛이라곤 오로지 수천, 수억의 거리가 떨어진 불타는 항성밖에 없을 테지. 아마 그마저도 제대로 비춰지지도 않으리라. 그곳에 몸을 맡기고 둥둥 떠다닌다면……
나의-인간의 머릿속에서 우주는 한없이 미화되어 있다.
대개 우주를 그린 그림이나 상상화, 하다못해 디지털 아트를 보아도 그렇다. 새까만 배경에 매니큐어 방울들을 흩뿌린 것처럼 별들만 빛난다. 때로는 온갖 기상천외한 추상적 붓질을 통해 총 천연빛 아름다운 성운이며 초신성 따위를 그려놓기도 한다. 그 아름다움은 황홀하지만, 어디까지나 인위적이다. 러브크래프트 신화의 우주적 공포스러움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사람은 자신이 어찌 할 수 없는 것에 존재 근본적인 두려움과 매력을 동시에 느끼는 모양이다.
말하기는 조금 부끄럽지만, 난 실제로 우주에 나가보려고 한 적이 있었다. 어느 대기업(이었던가, 여하튼)에서 화성에 보낼 후보 네 명을 뽑는다던가, 그런 광고를 보고 정말로 신청서를 작성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해당 광고의 작은 글자들을 더 자세히 읽어본 후 포기해야 했다. 엄청나게 까다로운 조건들 때문이었는데, 그것들이 뭐였는지 지금에 와선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그때 느꼈던 경악만큼은 또렷이 기억한다. 우주 비행사라며? 이건 완전히 CIA급 인사 조건인데?
그 다음엔, 부모님에게 우주에 가고 싶었다는 의사를 알렸다. 딸이 제멋대로 화성에 나가려다 말았다는 좌절된 시도에 그분들은 한편으론 경악하고, 한편으론 재미있어 하며 나를 놀렸다.
“우주로 나가서 뭐하게?”
“뭐하긴. 그냥 있지.”
“그럴 거면 뭐하러 거기까지 가? 여기서도 그냥 있을 수 있잖아.”
“거기엔 사람이 없잖아.”
“가족도 없이 너 혼자일 텐데?”
“잘됐지 뭐.”
그렇다. 우주에 나가게 된다면 - 먼 미래를 다루는 소설에 나온 것처럼 - 가족 단위의 이주가 아닌 이상, 그곳엔 오롯이 나 혼자이리라. 나도, 타인도, 그 누구도 어찌 좌우할 수 없는 고독. 그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달콤씁쓸한 유혹이다.
어쩌면 외계인들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말 그러기를 바라고 있다. 이 광막한 우주에 상주하는 종족이 인간만이라면 무척 재미 없지 않겠는가. 우리만 있을 리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주는 넓고, 모두가 함께 살 수 있을 공간은 넘쳐나니까. 그들이 우리보다 얼마나 앞서 있던, 혹은 뒤쳐져 있던, 호전적이던 우호적이던.
인간의 몸 속에는 별들에서만 나는 물질이 들어 있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별들의 자식인 셈이다. 몹시 낭만적이고도 위로가 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별들이-우주가 있는 한, 우리는 결국, 결코 혼자가 아니기에.
이렇게나 더없이 위험한 미지의 지역을 이토록 강렬하게 바라는 이유는, 어쩌면 그 곳에는 내가 있을 곳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