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기 (Ⅱ) 알 수 없는 인생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작업기 (Ⅱ) 알 수 없는 인생

0 개 2,595 박건호
내가 곡을 쓰는 방식은 사실 굉장히 간단했다. 가사를 주욱 써 놓고, 기타로 코드를 하나씩 잡다가 맘에 드는 코드 진행 방식을 찾는다. 그리고 흥얼흥얼거리며 가사를 수정해나가며 1절을 만들고 후렴구를 만든다. 화성도 모르고, 악보도 못 읽고, 정말 아무 것도 모른다.

사실 유일하게 보는 티비프로그램 <무한도전>이 내게 이런 이유없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무한도전 가요제에서 윤미래가 유재석에게 이런 말을 던진다. “음악적 지식이 없어도 느낌으로 작곡을 하는 아티스트들이 실제로 있다.” 아, 그렇구나. 그렇다면 이것이 작곡인가? 작곡이겠지? 들어서 자연스럽다면 되는 것. 후일 <무한도전>은 내게 한 번 더 용기를 심어주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차츰 “나의 곡들”과 “우리의 곡들”이 생겼고, 이메일을 통해 가사와 곡을 주고받던 J와 나는, 반응이 궁금해져 전역한지 얼마 안 된 2010년- 청주와 목포, 대전 등을 오가며 버스킹을 시도하게 되었다. 새로 합류한 보컬 K, 카혼 하나, 기타 한 대. 모두 작은 중소도시 규모들이었던데다, 당시 한국에서 홍대 이외의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는 것은 흔치 않았다. 결과는 박카스와 빵, 만 원 정도의 용돈.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과 반응들을 만났다. 대부분 긍정적이었고, 때로는 동정적(?)이었던 그들의 리액션에 나는, 영화나 글 이외에 또다른 표현방식을 서서히 습득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습득의 도중에는 결별도 생겨났다. 2011년. 그 해에 보컬 K군은 캐나다로, 나는 졸업영화를 찍을 것이 예정되어 있었다. 1차적인 과거를 정리한다는 이유로, 학교의 녹음실을 빌려 3일에 걸쳐 우리 음악 중 세 곡을 선정해 녹음하기로 했다. 녹음은 겉으로 보기엔 순조로웠다. 하지만 - 이유는 모르겠지만- 평소에 내가 작곡을 시작하게 된 것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던 J, 녹음 디렉팅을 영화연출처럼 하는 나 때문에 목이 다 쉬어버린 K군, 녹음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스튜디오 녹음을 하다가 좌절해버린 나. 모두들 성격이 착해서 내색은 못했지만, 모두 알고 있었을 것이다. 셋이 모이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겠구나, 하고.

정말로 그것이 마지막이 되었고, 우리의 연락은 조금씩 뜸해져갔다. 녹음한 것으로 디지털싱글이라도 내자는 말은 그야말로 바램이 되었다(앨범을 내기엔 녹음상태가 너무 빈약했다) 그리고 학교에선 시위를 하고, 졸업영화는 엎어지고, 다른 일들은 많이 들어오고, 나는 패닉상태가 되었다. 이어 뉴질랜드에 왔다.

뉴질랜드에 와서는 칼럼을 쓰게 되고, 일자리를 구하였으며, 삶은 점점 안정기로 접어들고, 화산처럼 부풀어 올랐었던 나의 패닉상태도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어디에나 있는, 어디에도 없는> 이라는, 내 삶의 끝을 조금씩 생각하게 되었다. 뜬금없이 목표로 정한,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필요한 사람일까 필요하지 않은 사람일까? 사람은 꼭 타인의 필요로 인해 살아지는 것인가? 스스로에게서 자존감을 찾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타인이란 내게 소통의 도구인가, 소통의 결과인가. 그 때, 철학자 믈라덴 돌라르와 <무한도전>이 한 번 더 나를 흔들었다.

슬라보예 지젝의 책에서, 돌라르는 이렇게 말한다. “주체는 호명의 결과로 출현하기는커녕 오직 호명이 문턱을 넘지 못하고 실패할 때, 그런 한에서만 출현한다” 물론 전체적인 문맥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지만, 주체, 호명, 출현 그리고 문턱. 나를 감싸고 있던 단어들의 문장이 당시의 나에게 스며들었다. 그리고, <무한도전> 의 박명수가 자신은 이제 작곡가라며 조그만 신디사이저 하나 맥북 하나를 들고 나와 “초조하게 거들먹거리는 꼴”이란! 두 사람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짚어내었다. 그 두 사람이 개그맨 박명수와 철학자 돌라르으으…였다. 이문세가 그랬다. 알 수 없는 인생이라고.

그 해 말, 나는 결국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또한 그러기에 목표가 되어버린 “어디에나 있는, 어디에도 없는”에 대한 끝이 궁금하여- 뉴질랜드에 조금 더 오래 머무는 것을 택했다. 그리고 워크비자가 나오던 날, 나는 곧바로 악기점으로 달려가 모니터 스피커와 마이크, 사운드카드와 신디사이저를 샀다.

홈 레코딩에 필요한 최소한의 장비였다. 그래, 나도 초조하게 거들먹거려보고 싶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기로에 서 있는 현대인들 사이에서, 나는 그 무엇도 아닌 그저 어떤 “주체”로서 스스로를 호명해보고 싶었다. 자아의 문턱도, 스스로를 호명하면 호명할수록 조금씩 닳아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고생과 설렘 속에 모든 세팅이 끝나고, 2014년을 목표로 딱 두 장의 앨범 발매를 위해- 나는 화성도 모르고 악보도 볼 줄 모르면서 무턱대고 건반을 눌러보기 시작했다.            (계속)

외롭고, 의존적인 사람들

댓글 0 | 조회 5,769 | 2013.06.26
나는 산책을 좋아한다. 보통 잠이 오지 않으면 가까운 바닷가로 나가 혼자 돌아다니다 오곤 한다. 핸드폰은 꺼두고 엠피쓰리만 켜두고 이곳저곳 쏘다닌다. 그런데 그것… 더보기

치과 (Ⅰ)

댓글 0 | 조회 3,687 | 2016.04.29
N과 함께 밥을 먹는데, N이 요즘 따라 자꾸 볼살을 씹는다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는데, 양치를 하러 갔었던 N이 달려와 플래시를 켠 핸드폰을 건냈다. 사… 더보기

담배

댓글 0 | 조회 2,698 | 2014.03.26
담배를 피운지는 조금 되었다. 미성년자를 벗어나기전부터 피웠으니 꽤 오래된 셈이다. 내가 좋아하게 되면 으레 그렇듯, 조금은 극단적으로 파고들었다. 담배가 신제품… 더보기

작업기 (Ⅰ) 작곡의 시작

댓글 0 | 조회 2,624 | 2014.05.13
음악 그 자체를 동경해왔었다. 이런 소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저런 소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냥 소리가 각자 다르다는 것이 신기했다. 책상 구석의 똑같은 … 더보기

현재 작업기 (Ⅱ) 알 수 없는 인생

댓글 0 | 조회 2,596 | 2014.05.27
내가 곡을 쓰는 방식은 사실 굉장히 간단했다. 가사를 주욱 써 놓고, 기타로 코드를 하나씩 잡다가 맘에 드는 코드 진행 방식을 찾는다. 그리고 흥얼흥얼거리며 가사… 더보기

파랑과 검정

댓글 0 | 조회 2,552 | 2016.03.24
인식이 색깔을 바꾼다.아주 어렸을 때, 내게는 스물네가지 색깔을 가지고 있던 크레파스가 있었다. 그 중 몇 개의 색깔을 닳도록 사용하고는 했는데, 그 중 하나가 … 더보기

댓글 0 | 조회 2,456 | 2016.02.25
무뎌진 발 뒤끝의 아릿함. 침대 위에서 내려오던 내 발 뒤꿈치도.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던 옷가지들도. 방 안 가득 베어있던 담배향들도. 익숙한 손가락의 까칠함에 … 더보기

B 에게

댓글 0 | 조회 2,396 | 2015.11.12
안녕하세요. 동갑이지만, 매우 친한 사이이지만, 이번 편지에서는 말을 높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오로지 편지를 쓸 때의 제 문체 성향 탓이니, 우리 사이가 멀어… 더보기

작업기(Ⅵ)- 발매 그리고 사기

댓글 0 | 조회 2,360 | 2015.05.27
초심을 찾기까지 아무런 곡을 작업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었다. 12월, 1월, 2월이 지나갔다. 긴 크리스마스 휴가와 왕가누이 여행, 부모님의 방문 등 그 사이에 … 더보기

화이

댓글 0 | 조회 2,326 | 2014.02.25
영화 <화이>. 다섯 명의 아빠 중 한 명인 석태가 아들 화이에게 말한다. 괴물이 두렵다면 괴물이 되거라. 괴물이라는 생명체에 대한 믿음은 순수성의 증… 더보기

江(Ⅸ)

댓글 0 | 조회 2,245 | 2015.08.13
물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잠이 든 다음 날 아침. 쓰레기통이 된 두 개의 배럴. 배럴 사이로 흐르는 습기와 강의 물냄새. 아침 산바람에 뒤척거리는 노란 텐트. … 더보기

욕망

댓글 0 | 조회 2,238 | 2015.12.10
사실 욕망이란 잃었을 때, 비로서 서서히 그 욕망의 실체를 드러낸다. 거기까지 썼을 때, 카페 안으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깊게 눌러쓴 검은 캡 모자, 닳아빠진 … 더보기

식물과 생각

댓글 0 | 조회 2,228 | 2016.01.28
8월부터, 웰링턴을 떠나 여기에 온 후 많은 식물을 재배하고 있다. 고추, 애호박, 피망, 해바라기, 토마토, 가지.. 주로 먹을 것들인데, 이는 돈을 조금이라도… 더보기

거미집(Ⅰ)

댓글 0 | 조회 2,214 | 2015.12.22
약 혹은 총기류를 쓰지 않는,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자살의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목을 매는 자살인 교사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투신의 방법. 노인… 더보기

자녀들의 나이 값을 쳐주는 부모

댓글 0 | 조회 2,207 | 2015.01.14
너무 되바라진 아이들을 보면 사실 인상이 써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국인 특히 한국부모이기 때문인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른들이 있는 곳에서나 공공장소에… 더보기

리더의 조건

댓글 0 | 조회 2,201 | 2015.11.26
초등학교 4학년 때, 나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반장이 되었다. 그 때는 반장이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 학급회의를 주재하고, 선생님이 없을 때 아이들을 조율하고. … 더보기

금연

댓글 0 | 조회 2,188 | 2014.10.15
큰 원이 있는 방 안에서, 남자는 턱을 괸 채 곰곰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고동색 책상을 앞에 둔 채 검은 의자 위에 앉아 멍하니 촛불 너머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 더보기

치과 (Ⅱ)

댓글 0 | 조회 2,183 | 2016.05.11
N의 동동거리던 발이 움직임을 멈춘 것은 의사가 주사바늘을 N의 입 속에서 뺀 이후였다. 기절했나? 나는 고개를 기웃거렸지만, N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각도였… 더보기

어떤증명

댓글 0 | 조회 2,171 | 2012.09.26
어느날 바닷가 주변을 친구와 걷고 있을 때, 지붕이 없는 스포츠카 한 대가 지나갔다. 나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바닷가 근처인데, 한국과는 달리 아무 것도 없었다… 더보기

자존감 (A면-타인과의 비교 그리고 화)

댓글 0 | 조회 2,165 | 2015.09.24
화가 난다. 그것을 틱낫한은 이렇게 표현했다. 온 몸 가득 독이 퍼진 것이라고. 독이 퍼진 것을 알아달라는 표현이니까, 상대방은 화난 사람에게 연민을 가져야 한다… 더보기

댓글 0 | 조회 2,144 | 2015.10.15
어처구니 없는 일을 겪었다. 어처구니없다, 라는 말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처구니 없다, 라는 것은 감정의 한 종류니까요. 제가 지금 감정이라는 것을 가질… 더보기

작업기 (Ⅲ) 요괴의 기다림

댓글 0 | 조회 2,120 | 2014.06.25
원래는 화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가만히 무엇인가 보는 것을 좋아했었습니다. 구름을 입에 문 새들이 태양 근처로 날개를 퍼덕이는 모습, 나뭇잎을 습관적… 더보기

댓글 0 | 조회 2,102 | 2014.04.23
또 비가 온다. 일주일 넘게 햇빛을 보지 못하고 살고 있다. 비가 오면 떠오르는 시간 몇 가지가 있다. 아주 어렸던 16살에, 나는 독특한 패션으로 거리를 쏘다녔… 더보기

안경

댓글 0 | 조회 2,083 | 2016.02.11
오빠가 사라졌다.안경이 너무 오래도록 보이지 않아 이상한 느낌에 오빠의 방에 가보았다. 퀴퀴한 냄새와 함께 냄새에 비해 꽤 정갈한, 빛이 들지 않는 방이 눈에 들… 더보기

도박

댓글 0 | 조회 2,060 | 2014.08.27
예전에 한국에 있을 때, “바다이야기”라는 곳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물고기처럼 지느러미를 파닥파닥거리며 버튼을 누르고 있었고, 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