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차 일본에 간 적이 있다. 도쿄나 교토, 오사카처럼 화려하거나 유명한 곳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아주 구석진 도시로, 그나마 ‘도시’라는 표현을 써주는 것도 어디까지나 예의상이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미에현(三重県)의 가메야마시(亀山市)가 그 곳이다.
일본의 문화나 역사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조사했지만, 실질적인 지리나 지역에 대한 지식은 전무하다 보니 정확한 비교는 할 수 없었어도, 직접 가 본 후의 감상은 한국으로 치자면 오산이나 동탄과 비슷하다는 느낌이었다. 개발된 지역과 아직 포크레인의 삽이 닿지 않은 곳이 마구 섞여 있고, 나무가 무성한 산이 있다가도 잠깐 졸다가 깨어 보면 어느새 콘크리트 빌딩들이 빽빽한 식이었다. 그게 싫었다. 도시도 완전한 시골도 아닌 어중간한 가운데 세상.
그 곳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는 회사의 기밀상 말할 수 없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다만 말해 줄 수 있는 건, 아주 오랫동안 서 있어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단 것과 입어야 하는 유니폼이 매우 답답하고 더웠다는 점 정도일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려야 하고, 일찍 출근해서 늦게 퇴근하고, 그 와중에서도 앉아서 쉴 수 있는 경우는 손에 꼽을 만큼인 데다가 하다못해 식사마저도 썩 좋진 않았지만…… 왜인지 지금은 상당히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엄연히 말하자면 위에서 언급한 부분들은 그 ‘즐거웠던 기억’의 축에는 끼지 못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 ‘즐거웠던’ 부분은 바로 일과 전혀 상관 없었던 가메야마에서의 추억들이 대부분이다.
우선, 숙소. 가메야마에서의 기숙사 숙소는 내가 여태까지 봐 온 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구조였다. 통 크게도 1인 1실을 쓰게 되어 있었는데, 바로 복층 원룸이었던 것이다. 지금에서야 흔한 구조물이 되었다지만 그때의 내게는 굉장한 인상을 주었다. 2층이 아닌데도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며 공간을 최고로 절약해 활용할 수 있다니, 그 실용성은 가히 감동적이었다. 거기에 작다고 해도 있을 건 다 있었다. 보지도 않는 텔레비전부터 세탁기와 욕조, 심지어 전기 담요까지 (내가 가메야마에 갔을 때는 12월이었으니 참으로 적절한 배려라 할 수 있겠다)!
숙소 건물은 마치 망망대해의 섬처럼 다른 마을의 건물들과 뚝 떨어져 있어서 미아가 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차로 10분 남짓한 거리에 몰(mall) 같은 중형 쇼핑몰과 레스토랑이 있었다. 카레 체인점이었는데, 나를 오리지널 일본식 카레의 맛에 홀딱 반하게 만들었다. 출장 근무처였던 회사의 구내 식당이 매우 형편 없었던 고로 나를 비롯해 한국인 직원들은 그 가게를 애용했다. 늦은 평일 저녁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주말이나 주일에 점심 또는 저녁을 먹으러 가면 크고 작은 아이들이 딸린 가족들이 가득했다. 근처에 주택이라곤 없는데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싶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 분위기에 압도되면서도 끝끝내 카레를 한 접시씩 해치우고 나오곤 했다.
쇼핑몰에는, 아쉽지만 딱 한 번 밖에 가보지 못했다. 크리스마스에 연이은 연휴였고, 할 일이 없었던 데다가 유일한 여직원이었던 나는 뉴질랜드에서도 그랬듯 혼자서 코트 하나를 꿰어 입고 몰로 향했다. 곧 떠날 테니, 기념 선물 하나 정도는 사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정작 살 것은 없어 구경만 실컷 하다 왔지만,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 분위기에 흠뻑 취한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으니까.
사실 가메야마가 유독 기억에 좋게 남아 있는 것은 그곳에서 보낸 고된 일상만큼, 홀로 고립된 채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유일한 여자로써, 그리고 일본인들 사이의 한국인들로써. 뉴질랜드에서도, 한국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나는 만족스럽게 고독했고, 고독하게 만족스러웠다.
그 묘한 느낌은, 지금도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