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그컵 - 서서히 덥혀지는 손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머그컵 - 서서히 덥혀지는 손

0 개 2,344 한얼
애지중지하며 모으는 것들 중에 머그컵이 있다. 말 그대로 정말 머그컵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마실 것을 담는 컵들.

대부분은 원통형에 둥그런 손잡이가 달린, 정말 멋 없을 정도로 평범한 디자인들이다. 심지어 다 같은 곳에서 만든 것들도 아닐 텐데 사이즈까지도 같다. 300mL 정도 들어가는, 그야말로 식후에 커피 한 잔을 따끈하게 끓여먹기 딱 좋은 용량이다 (물론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으므로 그 자리를 차가 대신 차지하긴 하지만).

컵. 모을 만한 물건들 중에서도 가장 실용적이지만, 동시에 많이 쌓이면 조금 곤란해지는 물건이기도 하다. 대체 컵을, 그것도 머그컵들을 그렇게 쟁여둬서 뭐에 쓰려고? 그렇게 물어오면 할 말이 없어진다. 그, 그냥? 이라고 굉장히 궁색한 변명을 하며 머그컵들로 꽉꽉 들어찬 선반 문을 닫으려 애를 쓰는 것 밖에는.

사실 남들이 그렇게 지적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 내가 구입하는 머그들은 그냥 머그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좋아하는 영화나 게임, 만화 등의 캐릭터들이 그려진 컵들이라는 것. 아기 고양이들이 나란히 앉아 찻잔으로 건배하는 머그라면 아, 저 사람은 귀여운 걸 좋아하는 구나, 하고 말겠지만 다 큰 처자가 소년 만화의 캐릭터들이 잔뜩 그려진 머그컵을 들고 있다? 눈총까진 아니더라도 호기심 어린 시선 한둘 정도는 받음직하다 (나의 명예를 위해서 덧붙이건대, 내게는 소년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머그는 없다. 적어도 ‘소년’ 만화 캐릭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품들, 머천다이스(merchandise)를 구입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관련된 물건이라면 뭐든 가지고 보고 싶은 매니아의 심정 때문이라 할 것이다. 사실 그것이 머그컵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일상 생활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컵이니까. 게다가 신주단지 모시듯 장롱 안에만 넣어놓고 가끔씩만 꺼내 보느니, 이왕이면 매일 보고 쓸 수 있는 물건이 낫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머그컵은 상기한 모든 요소들을 충족시켜준다. 예쁘고, 좋아하는 것과 관련이 있고, 더군다나 실용적이기까지. 궁극의 굿즈(goods)다.

굳이 그런 장르 물품이 아니더라도 나는 컵을 좋아한다. 우아하고 연약한 디자인의 커피잔, 오목한 찻잔도, 예쁜 무늬가 그려진 유리잔이나 그냥 평범한 머그잔도. 워낙 뭔가를 마시는 걸 좋아하고, 그런 만큼 그것을 담을 용기도 아끼는 탓이리라. 오래 써서 바닥에 닦아도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남은 컵도, 깨져서 도로 붙인 잔도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하는 지도 같은 것이다. 그런 깊이가 있는 물건을 좋아한다. 그리고 매일매일 여상적으로 사용하는 컵보다 그런 역사가 깊은 것이 또 있을까.

일본에는 킨츠기(金繼ぎ)라고 해서, 깨진 사기 그릇 등을 녹인 금으로 이어 붙이는 전통 예술이 있다고 한다. 얼마나 멋진가. 형체를 잃었다고 해서 그 안에 담긴 추억이나 역사까지 잊어버리지 않는-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기억하고 더욱 아름답게 간직하기 위해 금을 섞어 넣는다는 것이. 그리고 남은 흔적을 볼 때마다 아프기보다는 그래, 그 때는 그랬지, 라며 과거를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굳이 그런 센티멘털함이 없더라도 순전히 심미적인 가치로도 굉장한 기술이다.

……사실은 얼마 전, 새 컵을 또 샀다. 어디서 샀는지는 밝히지 않겠다. 디자인도 그렇고 용량도 보기 드문 제품이라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보통 컵보다도 훨씬 큰, 거의 500mL에 육박하는 크기(!)에 분홍색 벚꽃이 그려진 컵.

지금도 그 컵으로 차를 마시고 있다. 뜨거운 머그잔으로 서서히 덥혀지는 손의 온기는 내가 왜 머그잔을 모으는지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

아기들 - 가까우면서도 가까이 하기 힘든

댓글 0 | 조회 1,964 | 2014.09.24
싫어하는 것/무서워하는 것 중에 아기가 있다. 네 발로 기어 다니던, 두 발로 걸어 다니던, 크던 작던 상관 없다. 아기를 보면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은 거부감이… 더보기

부산여행 - 下

댓글 0 | 조회 1,889 | 2014.09.09
부산 여행에서 이런 저런 재미 있는 에피소드들이 있었지만 - 고작 1박 2일 사이에 그렇게 많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 그 중에서도 특히 기… 더보기

부산여행 - 上

댓글 0 | 조회 1,516 | 2014.08.26
부산은 3년만이었다. 아니, 2년만이던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오랜만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비록 가는 길은 입석이었지만, 그래서 다섯 시간 반 내내 딱딱한 바… 더보기

향수, 향기와 기억

댓글 0 | 조회 2,229 | 2014.08.13
후각이 예민한 편이다. 어릴 적부터 그래왔다. 소설 <향수>의 주인공처럼 초인적이거나 하진 않지만, 그래도 꽤 냄새를 잘 맡는다. 누가 어떤 꽃 향기의… 더보기

애마-아니, 말 말고

댓글 0 | 조회 2,427 | 2014.07.24
운전 면허를 땄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내게도 자동차가 있다. 작고 까만 소형차로, 이름은 심플하게 모닝이라고 부른다 (난 내가 가진 모든 기계들에게 이름을 붙여… 더보기

고양이-우리와 가장 비슷한 동물

댓글 0 | 조회 2,549 | 2014.07.09
출근한 어느 주말이었다. 이 무더운 날씨, 나와 마찬가지로 좋던 싫던 이런 날에조차 직장에 나와야 하는 모든 이들을 애도하며 편의점에 들렀다. 열심히 음료수를 고… 더보기

우주-언젠가 돌아갈

댓글 0 | 조회 1,857 | 2014.06.25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곳 중에 우주가 있다. 우주의 어디? 라고 물으면 대답이 조금은 궁해지고 만다. 나폴리, 라던가 리스본, 처럼 딱히 명칭이 정해져 있는 곳… 더보기

명동 - 낯섦과 익숙함의 교차로

댓글 0 | 조회 1,909 | 2014.06.10
사실 한국에 살던 때에도 명동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아주 멋지고, 그래서 놀기 좋은 동네라는 표현은 들어보았지만 직접 보지는 못했다. 그런 명동을, 아… 더보기

놀이터

댓글 0 | 조회 1,182 | 2014.05.28
어른이 되었어도, 놀이터를 지나칠 때마다 뛰어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사실 10대 후반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어린아이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그네를 타고 … 더보기

가메야마 - 만족스런 고독

댓글 0 | 조회 2,388 | 2014.04.24
출장 차 일본에 간 적이 있다. 도쿄나 교토, 오사카처럼 화려하거나 유명한 곳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아주 구석진 도시로, 그나마 ‘도시’라는 표현을 써… 더보기

게임 - 모든 이들을 위한 즐거움

댓글 0 | 조회 2,003 | 2014.04.09
게임을 좋아한다. 중독까진 아니더라도, 이틀에 한 시간 정도는 즐기곤 한다. 온라인 게임은 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동생이나 사촌 등이 하자고 열심히 졸랐을 때 설… 더보기

현재 머그컵 - 서서히 덥혀지는 손

댓글 0 | 조회 2,345 | 2014.03.26
애지중지하며 모으는 것들 중에 머그컵이 있다. 말 그대로 정말 머그컵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마실 것을 담는 컵들. 대부분은 원통형에 둥그런 손잡이가 달린… 더보기

목욕 - 쉬었다 가기

댓글 0 | 조회 2,135 | 2014.02.26
기회가 된다면 좀 더 자주, 기왕이면 매일매일 하고 싶은 것 중에 목욕이 있다. Take bath, 그러니까 단순히 몸을 씻는 샤워가 아닌 ‘목욕’이다. 말 그대… 더보기

음악에 관한 두 번째 이야기

댓글 0 | 조회 1,675 | 2014.02.12
얼마 전에 어떤 노래를 발견했다. 정말 끝내주게 아름답고 들을 때마다 슬픈 노래라서, 매일 적어도 세 번씩은 꼭 듣고 있다.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어쩌다가, … 더보기

외출 - 짧은 여행

댓글 0 | 조회 2,000 | 2014.01.30
한국에 오고 나서부터 부쩍 는 것이 있다면, 외출이다. 심심한 오클랜드에서 살던 때와는 대조적으로 거의 주말마다 외출을 하곤 한다. 보통 멀리 나가므로 - 지하철… 더보기

결혼 - 머나먼 이야기

댓글 0 | 조회 2,056 | 2014.01.15
사촌 오빠의 결혼식이 있었다. 가까운 가족이 결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위화감이 굉장했다. ‘예쁘게’ 차려 입고 와야 하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이었기에 … 더보기

땅도 하늘도 바다도 아닌

댓글 0 | 조회 1,662 | 2013.12.24
땅이냐, 바다냐, 하늘이냐. 그렇게 묻는다면 난 옵션 중엔 없는 대답을 내놓을 것이다. 지하라고. 뉴질랜드에서 사는 동안 가장 그리웠던 것을 꼽으라면 단연코 지하… 더보기

즐거운 노동

댓글 0 | 조회 1,620 | 2013.11.26
집에 혼자 있는데도 빨래가 산더미처럼 쌓이곤 한다. 그것도 아주 자주. 이럴 땐 무척 당혹스럽다. 게다가 성미상 미루는 것에도 매우 소질이 없는지라 거의 사나흘에… 더보기

즐거운 자기 재확인

댓글 0 | 조회 995 | 2013.11.12
쇼핑을 좋아한다. 옷을 사거나 책을 사는 등의, 좋아하는 물건들을 사는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일상 생활에 필요한 식료품이나 생필품을 사러 가는 일도 모두 즐… 더보기

운전 - 핵심 감정들의 풀코스

댓글 0 | 조회 2,273 | 2013.10.23
운전은 몇 달 만에 처음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자동차가 무서워 생각도 하지 않았고, 대학 때는 버스나 배를 타고 다니면 되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한 탓에 불과 작… 더보기

화장 - 복잡한 신비로움

댓글 0 | 조회 1,471 | 2013.10.08
회사에 다니면서부터 나는 사회인이 되었고, 사회인이 되면서부터 시작한 것이 있다. 화장이다. 나는 그것에, 마치 낯설고 어려운 동물을 대하듯 다가가고 있다. 조심… 더보기

기계, 우리들의(아직은 불완전한) 동반자

댓글 0 | 조회 1,304 | 2013.09.24
얼마 전부터 노트북이 말썽이다. 또. 포맷한지 얼마나 됐다고 말썽인지, 마치 혼나도 혼나도 말썽을 피우는 꼬마 같다고 생각하며 좌절하고, 화를 내고, 투덜거렸다.… 더보기

예쁜 것과 아픈 것

댓글 0 | 조회 1,560 | 2013.09.11
모든 여자들은 원하는 만큼 근사한 신발들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자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남성들의 자유로운 신발 소유권(?) 및 선택의 폭을… 더보기

바뀌지 말았으면 하는 것들

댓글 0 | 조회 1,282 | 2013.08.28
누구에게나 삶의 패턴은 있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규칙, 루틴, 어겨선 안 될 불문율, (이런 조잡한 표현을 사용해도 좋다면) 징크스. 나는 두 말 할 것도 없고,… 더보기

머리카락 - 내 것이면서 내 것이 아닌 것

댓글 0 | 조회 1,595 | 2013.08.14
한국에 와서 한 달이 지난 후, 머리를 잘랐다. 2년만이었다. 목까지 오지도 않도록, 귀 아래에서 찰랑거리도록 단칼(가위?)에 싹둑. 내 잘린 머리를 두고 많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