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화이

0 개 2,326 박건호
영화 <화이>. 다섯 명의 아빠 중 한 명인 석태가 아들 화이에게 말한다. 괴물이 두렵다면 괴물이 되거라. 괴물이라는 생명체에 대한 믿음은 순수성의 증명이기도 하다. 인간은 일말의 순수성을 가지기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고, 환상을 동경하고 의심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괴물”은 실증 될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으로 말미암은 압박은 - 우리들의 심리를 위협하며, 행동을 통제하며, 죄 혹은 악에 대한 판단의 가치를 체화시킨다. 그리고 이 영화는 선(善)과 순수성 너머의 위험한 경계를 괴물이라는 상징으로서 보여준다.

화이를 제외한 다섯 명의 아빠들은 이미 괴물들이다. 이들은 괴물이 두렵지 않다. 이미 괴물이니까. 다만 화이에 대한 부성애가 이들에게는 유일한 괴물이다. 영화의 중반부, 화이는 자신의 친아버지를 죽인 이후로 서서히 괴물이 되어간다. 다섯 명의 아빠들은 그러나, 자신들이 화이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그 순간에도 화이를 달래려하고, 화이의 안전을 걱정한다.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플롯은 기존영화에서 관철되는 뚜렷한 대립은 아니다. 화이는 아빠들의 현재에서 자신의 현재를 설계하다 서서히 자신의 판단으로 스스로를 설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빠들은 때때로 화이에게서 순수성을 찾는 기쁨과 설렘을 갖는다. 아빠들은 화이에게 괴물이 되기를 요구하면서도, 화이가 자신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 한편 화이는 자신의 속에 감춰진 순수성을 또래 여학생에게서 찾는다. 화이의 친부모는 화이가 주었던 행복함을 끝까지 기다리고, 그 친부모가 사는 달동네를 무차별적으로 철거하는 건설회사의 사장은 신사적인 행동으로 자신이 괴물임을 숨긴다.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기성세대들은 괴물들이다. 인상 깊은 장면은, 외면적으로는 가장 “괴물스러운” 것으로 취급되는, 오직 가까운 것만 볼 수 있는 시각장애인이 그들을 향해 “그 눈.. 사람이 아니야” 라고 외치는 장면이다.

화이는 자신들의 삶을 설계해 주었던 아버지들을 죽이는 것을 택한다. 타인이 만들어 놓은 구조물들을 파괴하고, 괴물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화이 자신은 괴물의 바깥에서 태양빛을 따라 괴물들을 저격하며, 마침내 “괴물이 두렵다면 괴물을 삼켜야 한다”, 라고 말했던 석태마저 죽인다. 그리고는 또래 여학생에게 카메라와 자화상이라는, 다소 작위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가능성과 자아의 도구를 선물한 후, 마침내는 대한민국의 심장 - 이 노골적인 표현은 영화에 걸쳐 세 번이나 나온다 - 이라는 건설회사의 사장을 저격한다.

지금 한국사회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다. 가장 높으신 분은 겉으로는 항상 도덕책처럼 말한다. 원래 도덕시험이 제일 쉽다. 그저 누가 봐도 옳은 소리만 상식적으로 골라내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입 바른 소리와 북한, 그리고 때로는 침묵으로 무장한 괴물이, 또다른 괴물들을 골라 자신의 옆과 밑에 배치시킨다. <화이>처럼, 괴물 혹은 괴물들이 괴물을 만든다. 더욱이 그것이 통제된 환경이라면 더더욱 통치가 용이하다. 또한 나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일수록 우민정책과 범법의 원초적 짜릿함은 편안하게 다가온다. 사실 영화 <화이>의 진성처럼, 괴물 중에서도 <최후의 아나키스트> 같은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영화 속 진성이 “화이는 우리와 달라”라며 내놓는 해결책은, 필리핀 유학이라는 공간적 탈출이다. 그리고 탈출하고 싶은 공간의 그 땅위에서, 순수성을 외면한 괴물들이 목적과 결과를 조작하고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훌륭한 문화매체는 시대를 대변한다. 지금의 한국 상황과 해결책을 적확하게 표현해낸 가장 최근의 영화가 <화이>라면, 이와 오버랩되는 소설은 루쉰의 <광인일기>이다. <광인일기>의 마지막 문장 “아이들을 구하라”와, 자신에게 주어진 괴물을 외면하는 화이의 모습. 요즘 한국과, <화이>와, <광인일기>의 메시지는 이러하다. 미래의 가능성인 아이들이 대한민국의 괴물들을 저격할만한 사고를 가질 수 있는가, 혹은 기성세대들이 아이들로 하여금 그런 사고를 가질 수 있게 만들고 있는가.

이 외에도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는 영화 <화이>는 논리적인 스토리가 아닌 -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소재를 풀어내는 방법론과 탄탄하고 치열하게 짜인 독한 화면연출들이 돋보이는 영화다. 화면이나 대사들도 상당히 거친 편인데, 현재 한국의 9시 뉴스들보다는 덜 끔찍하므로 감상에는 크게 무리가 없는 편이다. 영화의 상징은 현실의 인식을 찌르고, 인식은 곧 이 영화에서 화이가 온몸으로 이야기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 된다. 그리고 화이는 또 다른 시작을 위해 거리 너머로 걸어갔다.
그렇다면 지금, 또 다른 화이들은 어디에 있는가.

외롭고, 의존적인 사람들

댓글 0 | 조회 5,772 | 2013.06.26
나는 산책을 좋아한다. 보통 잠이 오지 않으면 가까운 바닷가로 나가 혼자 돌아다니다 오곤 한다. 핸드폰은 꺼두고 엠피쓰리만 켜두고 이곳저곳 쏘다닌다. 그런데 그것… 더보기

치과 (Ⅰ)

댓글 0 | 조회 3,687 | 2016.04.29
N과 함께 밥을 먹는데, N이 요즘 따라 자꾸 볼살을 씹는다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는데, 양치를 하러 갔었던 N이 달려와 플래시를 켠 핸드폰을 건냈다. 사… 더보기

담배

댓글 0 | 조회 2,698 | 2014.03.26
담배를 피운지는 조금 되었다. 미성년자를 벗어나기전부터 피웠으니 꽤 오래된 셈이다. 내가 좋아하게 되면 으레 그렇듯, 조금은 극단적으로 파고들었다. 담배가 신제품… 더보기

작업기 (Ⅰ) 작곡의 시작

댓글 0 | 조회 2,624 | 2014.05.13
음악 그 자체를 동경해왔었다. 이런 소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저런 소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냥 소리가 각자 다르다는 것이 신기했다. 책상 구석의 똑같은 … 더보기

작업기 (Ⅱ) 알 수 없는 인생

댓글 0 | 조회 2,596 | 2014.05.27
내가 곡을 쓰는 방식은 사실 굉장히 간단했다. 가사를 주욱 써 놓고, 기타로 코드를 하나씩 잡다가 맘에 드는 코드 진행 방식을 찾는다. 그리고 흥얼흥얼거리며 가사… 더보기

파랑과 검정

댓글 0 | 조회 2,552 | 2016.03.24
인식이 색깔을 바꾼다.아주 어렸을 때, 내게는 스물네가지 색깔을 가지고 있던 크레파스가 있었다. 그 중 몇 개의 색깔을 닳도록 사용하고는 했는데, 그 중 하나가 … 더보기

댓글 0 | 조회 2,456 | 2016.02.25
무뎌진 발 뒤끝의 아릿함. 침대 위에서 내려오던 내 발 뒤꿈치도.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던 옷가지들도. 방 안 가득 베어있던 담배향들도. 익숙한 손가락의 까칠함에 … 더보기

B 에게

댓글 0 | 조회 2,400 | 2015.11.12
안녕하세요. 동갑이지만, 매우 친한 사이이지만, 이번 편지에서는 말을 높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오로지 편지를 쓸 때의 제 문체 성향 탓이니, 우리 사이가 멀어… 더보기

작업기(Ⅵ)- 발매 그리고 사기

댓글 0 | 조회 2,361 | 2015.05.27
초심을 찾기까지 아무런 곡을 작업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었다. 12월, 1월, 2월이 지나갔다. 긴 크리스마스 휴가와 왕가누이 여행, 부모님의 방문 등 그 사이에 … 더보기

현재 화이

댓글 0 | 조회 2,327 | 2014.02.25
영화 <화이>. 다섯 명의 아빠 중 한 명인 석태가 아들 화이에게 말한다. 괴물이 두렵다면 괴물이 되거라. 괴물이라는 생명체에 대한 믿음은 순수성의 증… 더보기

江(Ⅸ)

댓글 0 | 조회 2,249 | 2015.08.13
물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잠이 든 다음 날 아침. 쓰레기통이 된 두 개의 배럴. 배럴 사이로 흐르는 습기와 강의 물냄새. 아침 산바람에 뒤척거리는 노란 텐트. … 더보기

욕망

댓글 0 | 조회 2,240 | 2015.12.10
사실 욕망이란 잃었을 때, 비로서 서서히 그 욕망의 실체를 드러낸다. 거기까지 썼을 때, 카페 안으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깊게 눌러쓴 검은 캡 모자, 닳아빠진 … 더보기

식물과 생각

댓글 0 | 조회 2,229 | 2016.01.28
8월부터, 웰링턴을 떠나 여기에 온 후 많은 식물을 재배하고 있다. 고추, 애호박, 피망, 해바라기, 토마토, 가지.. 주로 먹을 것들인데, 이는 돈을 조금이라도… 더보기

거미집(Ⅰ)

댓글 0 | 조회 2,217 | 2015.12.22
약 혹은 총기류를 쓰지 않는,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자살의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목을 매는 자살인 교사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투신의 방법. 노인… 더보기

자녀들의 나이 값을 쳐주는 부모

댓글 0 | 조회 2,207 | 2015.01.14
너무 되바라진 아이들을 보면 사실 인상이 써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국인 특히 한국부모이기 때문인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른들이 있는 곳에서나 공공장소에… 더보기

리더의 조건

댓글 0 | 조회 2,202 | 2015.11.26
초등학교 4학년 때, 나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반장이 되었다. 그 때는 반장이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 학급회의를 주재하고, 선생님이 없을 때 아이들을 조율하고. … 더보기

금연

댓글 0 | 조회 2,191 | 2014.10.15
큰 원이 있는 방 안에서, 남자는 턱을 괸 채 곰곰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고동색 책상을 앞에 둔 채 검은 의자 위에 앉아 멍하니 촛불 너머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 더보기

치과 (Ⅱ)

댓글 0 | 조회 2,183 | 2016.05.11
N의 동동거리던 발이 움직임을 멈춘 것은 의사가 주사바늘을 N의 입 속에서 뺀 이후였다. 기절했나? 나는 고개를 기웃거렸지만, N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각도였… 더보기

어떤증명

댓글 0 | 조회 2,173 | 2012.09.26
어느날 바닷가 주변을 친구와 걷고 있을 때, 지붕이 없는 스포츠카 한 대가 지나갔다. 나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바닷가 근처인데, 한국과는 달리 아무 것도 없었다… 더보기

자존감 (A면-타인과의 비교 그리고 화)

댓글 0 | 조회 2,165 | 2015.09.24
화가 난다. 그것을 틱낫한은 이렇게 표현했다. 온 몸 가득 독이 퍼진 것이라고. 독이 퍼진 것을 알아달라는 표현이니까, 상대방은 화난 사람에게 연민을 가져야 한다… 더보기

댓글 0 | 조회 2,145 | 2015.10.15
어처구니 없는 일을 겪었다. 어처구니없다, 라는 말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처구니 없다, 라는 것은 감정의 한 종류니까요. 제가 지금 감정이라는 것을 가질… 더보기

작업기 (Ⅲ) 요괴의 기다림

댓글 0 | 조회 2,120 | 2014.06.25
원래는 화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가만히 무엇인가 보는 것을 좋아했었습니다. 구름을 입에 문 새들이 태양 근처로 날개를 퍼덕이는 모습, 나뭇잎을 습관적… 더보기

댓글 0 | 조회 2,103 | 2014.04.23
또 비가 온다. 일주일 넘게 햇빛을 보지 못하고 살고 있다. 비가 오면 떠오르는 시간 몇 가지가 있다. 아주 어렸던 16살에, 나는 독특한 패션으로 거리를 쏘다녔… 더보기

안경

댓글 0 | 조회 2,083 | 2016.02.11
오빠가 사라졌다.안경이 너무 오래도록 보이지 않아 이상한 느낌에 오빠의 방에 가보았다. 퀴퀴한 냄새와 함께 냄새에 비해 꽤 정갈한, 빛이 들지 않는 방이 눈에 들… 더보기

도박

댓글 0 | 조회 2,061 | 2014.08.27
예전에 한국에 있을 때, “바다이야기”라는 곳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물고기처럼 지느러미를 파닥파닥거리며 버튼을 누르고 있었고, 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