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화이

0 개 2,325 박건호
영화 <화이>. 다섯 명의 아빠 중 한 명인 석태가 아들 화이에게 말한다. 괴물이 두렵다면 괴물이 되거라. 괴물이라는 생명체에 대한 믿음은 순수성의 증명이기도 하다. 인간은 일말의 순수성을 가지기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고, 환상을 동경하고 의심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괴물”은 실증 될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으로 말미암은 압박은 - 우리들의 심리를 위협하며, 행동을 통제하며, 죄 혹은 악에 대한 판단의 가치를 체화시킨다. 그리고 이 영화는 선(善)과 순수성 너머의 위험한 경계를 괴물이라는 상징으로서 보여준다.

화이를 제외한 다섯 명의 아빠들은 이미 괴물들이다. 이들은 괴물이 두렵지 않다. 이미 괴물이니까. 다만 화이에 대한 부성애가 이들에게는 유일한 괴물이다. 영화의 중반부, 화이는 자신의 친아버지를 죽인 이후로 서서히 괴물이 되어간다. 다섯 명의 아빠들은 그러나, 자신들이 화이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그 순간에도 화이를 달래려하고, 화이의 안전을 걱정한다.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플롯은 기존영화에서 관철되는 뚜렷한 대립은 아니다. 화이는 아빠들의 현재에서 자신의 현재를 설계하다 서서히 자신의 판단으로 스스로를 설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빠들은 때때로 화이에게서 순수성을 찾는 기쁨과 설렘을 갖는다. 아빠들은 화이에게 괴물이 되기를 요구하면서도, 화이가 자신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 한편 화이는 자신의 속에 감춰진 순수성을 또래 여학생에게서 찾는다. 화이의 친부모는 화이가 주었던 행복함을 끝까지 기다리고, 그 친부모가 사는 달동네를 무차별적으로 철거하는 건설회사의 사장은 신사적인 행동으로 자신이 괴물임을 숨긴다.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기성세대들은 괴물들이다. 인상 깊은 장면은, 외면적으로는 가장 “괴물스러운” 것으로 취급되는, 오직 가까운 것만 볼 수 있는 시각장애인이 그들을 향해 “그 눈.. 사람이 아니야” 라고 외치는 장면이다.

화이는 자신들의 삶을 설계해 주었던 아버지들을 죽이는 것을 택한다. 타인이 만들어 놓은 구조물들을 파괴하고, 괴물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화이 자신은 괴물의 바깥에서 태양빛을 따라 괴물들을 저격하며, 마침내 “괴물이 두렵다면 괴물을 삼켜야 한다”, 라고 말했던 석태마저 죽인다. 그리고는 또래 여학생에게 카메라와 자화상이라는, 다소 작위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가능성과 자아의 도구를 선물한 후, 마침내는 대한민국의 심장 - 이 노골적인 표현은 영화에 걸쳐 세 번이나 나온다 - 이라는 건설회사의 사장을 저격한다.

지금 한국사회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다. 가장 높으신 분은 겉으로는 항상 도덕책처럼 말한다. 원래 도덕시험이 제일 쉽다. 그저 누가 봐도 옳은 소리만 상식적으로 골라내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입 바른 소리와 북한, 그리고 때로는 침묵으로 무장한 괴물이, 또다른 괴물들을 골라 자신의 옆과 밑에 배치시킨다. <화이>처럼, 괴물 혹은 괴물들이 괴물을 만든다. 더욱이 그것이 통제된 환경이라면 더더욱 통치가 용이하다. 또한 나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일수록 우민정책과 범법의 원초적 짜릿함은 편안하게 다가온다. 사실 영화 <화이>의 진성처럼, 괴물 중에서도 <최후의 아나키스트> 같은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영화 속 진성이 “화이는 우리와 달라”라며 내놓는 해결책은, 필리핀 유학이라는 공간적 탈출이다. 그리고 탈출하고 싶은 공간의 그 땅위에서, 순수성을 외면한 괴물들이 목적과 결과를 조작하고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훌륭한 문화매체는 시대를 대변한다. 지금의 한국 상황과 해결책을 적확하게 표현해낸 가장 최근의 영화가 <화이>라면, 이와 오버랩되는 소설은 루쉰의 <광인일기>이다. <광인일기>의 마지막 문장 “아이들을 구하라”와, 자신에게 주어진 괴물을 외면하는 화이의 모습. 요즘 한국과, <화이>와, <광인일기>의 메시지는 이러하다. 미래의 가능성인 아이들이 대한민국의 괴물들을 저격할만한 사고를 가질 수 있는가, 혹은 기성세대들이 아이들로 하여금 그런 사고를 가질 수 있게 만들고 있는가.

이 외에도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는 영화 <화이>는 논리적인 스토리가 아닌 -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소재를 풀어내는 방법론과 탄탄하고 치열하게 짜인 독한 화면연출들이 돋보이는 영화다. 화면이나 대사들도 상당히 거친 편인데, 현재 한국의 9시 뉴스들보다는 덜 끔찍하므로 감상에는 크게 무리가 없는 편이다. 영화의 상징은 현실의 인식을 찌르고, 인식은 곧 이 영화에서 화이가 온몸으로 이야기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 된다. 그리고 화이는 또 다른 시작을 위해 거리 너머로 걸어갔다.
그렇다면 지금, 또 다른 화이들은 어디에 있는가.

현재 화이

댓글 0 | 조회 2,326 | 2014.02.25
영화 <화이>. 다섯 명의 아빠 중 한 명인 석태가 아들 화이에게 말한다. 괴물이 두렵다면 괴물이 되거라. 괴물이라는 생명체에 대한 믿음은 순수성의 증… 더보기

서바이벌

댓글 0 | 조회 1,726 | 2014.02.12
지금은 묻혀버렸지만, 작년 11월쯤 한국의 엠넷에서 작곡가 서바이벌을 주제로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었다. 티비를 안 보아서 홍보의 여부는 모르겠지만, 4회 만에 … 더보기

한국에서

댓글 0 | 조회 1,764 | 2014.01.30
2년 만에 한국에 다녀왔다. 인천공항의 분위기는 여전했다. 부산스럽지만 깔끔한, 이용자의 동선을 최대한 고려하여 만든 회색빛의 거대한 이동체. 사람들은 세포처럼 … 더보기

모자이크(Ⅲ)

댓글 0 | 조회 1,824 | 2013.12.24
호텔의 방. 창가 태양의 광선이 대기를 통과하고, 산란된 빛의 파장은 곧게 흩어져 호텔의 창가에 곱게 내려앉아있다. 먼지들이 빛의 언저리를 떠돌고, 창틀에 반쯤 … 더보기

모자이크(Ⅱ)

댓글 0 | 조회 1,232 | 2013.11.27
호텔 앞의 해변 아침에 일어나 담배 연기같은 차가운 태양이 빛나는 바다를 보았다. 빨간 투명함이 내리쬐는 백사장엔 무덤 하나가 있었고 그 위의 크림빛 소녀는 고개… 더보기

모자이크(Ⅰ)

댓글 0 | 조회 1,257 | 2013.11.12
호텔의 1층 아무도 없는 호텔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20세기 초의 미국. 시간에 엑스레이를 찍는 직업이 있었다. 소들과, 알 수 없는 짐승의 먼지 쌓인 뼈들을 … 더보기

지느러미

댓글 0 | 조회 1,456 | 2013.10.22
1. 나는 몇몇 여자들에게 미안함을 안고 살아가야한다. 허세, 조작, 이기가 엉켜서 나 스스로도 통제 못하던 때가 있었다. 나를 연출하는 것은 나의 처세가 되었었… 더보기

피곤한 고양이

댓글 0 | 조회 1,703 | 2013.10.08
영화학과 출신이라는 것은 좋은 일이다. 대학시절, 학과 공부는 잘 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영화와 관련된 종합예술에 있어서만큼은 -조금 편협하긴 해도- 나름대로 공부… 더보기

칼럼

댓글 0 | 조회 1,714 | 2013.09.24
칼럼. 칼럼이란 것을 쓴 지 1년이 되었다. 그 뜻은 내가 여기 온지 1년이 조금 넘었다는 뜻일 것이다. 2012년 6월 초순, 워킹홀리데이라는 비자로 뉴질랜드로… 더보기

이사

댓글 0 | 조회 1,901 | 2013.09.10
저번 주였다. 내가 사는 플랫의 인터넷이 일주일 남짓 먹통상태일 때였다. 일주일 내내 플랫메이트들을 볼 때마다 얘기를 했다. 난 인터넷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 더보기

Boy A

댓글 0 | 조회 1,399 | 2013.08.28
초록빛 눈이 오는 날이다. 회개하기 위하여 떠나기가 쉽지가 않아 흔들흔들거린다. 너를 떠날 수 있는 날, 그리하여 다시 너를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년은 늘 … 더보기

너의 스위치였다

댓글 0 | 조회 1,651 | 2013.08.14
딸깍. 열리는 암실의 문. 외면하고 싶은 현실은 때때로 순간을 아름답게 포착해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아름다운 포착은 시간을 초월한 채 머리 한 켠에 걸어지는 … 더보기

카페

댓글 0 | 조회 1,985 | 2013.07.23
17살. 나는 카페에 자주 갔었다. 스타벅스, 카페베네 등의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오기 전이었던 시절 이야기다. 가게의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2층에 있었던 그… 더보기

풋내기의 솔직한 노래

댓글 0 | 조회 1,554 | 2013.07.09
예전부터 “왜 그렇게 사람이 빡빡해요?”라는 말을 종종 들어왔다. 팍팍하다는 말은 다양한 의미의 관용구로 해석될 수 있으나, 나의 경우에는 … 더보기

외롭고, 의존적인 사람들

댓글 0 | 조회 5,769 | 2013.06.26
나는 산책을 좋아한다. 보통 잠이 오지 않으면 가까운 바닷가로 나가 혼자 돌아다니다 오곤 한다. 핸드폰은 꺼두고 엠피쓰리만 켜두고 이곳저곳 쏘다닌다. 그런데 그것… 더보기

자기소개서

댓글 0 | 조회 1,552 | 2013.06.11
본의 아니게 대학원에 입학하려는 사람의 자기소개서를 도와주게 되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대학원이 뭐하는 곳이었는지 헷갈릴 정도로 충격적인 초고를 이메일로 … 더보기

생산자와 소비자의 시의성에 대하여

댓글 0 | 조회 1,419 | 2013.05.28
기차에서 피가 났다, 레일에서 피가 굉음을 내며 흐른다. 줄줄줄줄줄줄줄줄 흐른다 Medina의 You and I를 듣는다. I feel like. I’… 더보기

허세

댓글 0 | 조회 1,399 | 2013.05.14
내가 다녔던 대학교에는 커다란 잔디밭이 있었다. 오월의 광장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는데, 광장이 가져다주는 어떤 암울한 느낌을 5월이라는 봄 냄새 가득한 단어로서 상… 더보기

음악시간

댓글 0 | 조회 1,452 | 2013.04.24
다음 주까지 각자 음악적인 재주 하나를 가져오면 되는거야. 중학교 시절, 미치광이로 유명했던 음악 선생이 말했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어렵다며 불평불만, 투덜투… 더보기

얼굴

댓글 0 | 조회 1,358 | 2013.04.10
영화 <접속>, <공감>, <8월의 크리스마스> 등등. 수많은 애틋한 만남들과 우연을 가장한 필연과 미필적 대본 속 우연들이 교집… 더보기

소리

댓글 0 | 조회 1,438 | 2013.03.26
바람결에 흔들리는 투우사의 망토와도 같은, 서걱거리는 심장이 있었다. 영혼의 텍스트들이 두터운 긴장감으로 다다다다닥 머릿속을 훑어내고, 가느다란 담배연기가 시간 … 더보기

적과 빛

댓글 0 | 조회 1,246 | 2013.02.27
그 일은 2011년 3월 중순 너무도 갑작스레 일어났다. 일종의 컨설팅 회사가 내가 다니던 대학교를 한 번 다녀갔고, 이틀 뒤 한 강사 분이 우리에게 소식을 전해… 더보기

배탈

댓글 0 | 조회 1,498 | 2013.02.13
몇 년만에 아픈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심하게 아픈 것은 군대 이후로 처음인 것 같은데, 지금이 조금 더 심한 것 같다. 3일 째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계속해서… 더보기

어디에나 있는, 어디에도 없는

댓글 0 | 조회 1,493 | 2013.01.31
1.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찍은 단편영화: 늦어도 2월까지는 편집 완료! 2. 랭귀지 스쿨에서 한국말 가르치기: 교재 제작! 3. 정착: 워크비자 준비할 것! 4. … 더보기

크라이스트처치 기행 메모

댓글 0 | 조회 1,391 | 2013.01.15
1. 백패커. 나는 1층에 있었고 호주에서 왔다는 한국인은 2층에 있었다. 그는 침대 위에서 무언가를 먹고 있었고, 머리 위에 있는 할로겐 조명을 켠 채 노트북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