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이크(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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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Ⅱ)

0 개 1,230 박건호
호텔 앞의 해변
아침에 일어나 담배 연기같은 차가운 태양이 빛나는 바다를 보았다. 빨간 투명함이 내리쬐는 백사장엔 무덤 하나가 있었고 그 위의 크림빛 소녀는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앉아있었다. 고물콤팩트디스크플레이어에서는 dir en grey의 <ain’t afraid to die>가 흐르고 있었고 바닷바람은 조용히 불어왔다. 11월이다.“무덤 위에 앉아 있는 작은 천사.”그러자 맨발의 크림빛 소녀는 조용히 일어선 후 뚜벅뚜벅 걸어와 내 옆에 섰다. 나는 앉아있었기 때문에 소녀를 보기 위해 고개를 들어야했다. 마주 본 우리는 낡은 개구리 인형처럼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까만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너무 까매서 해변의 모래 위, 그들은 그림자처럼 빛나서 사실 다가오는지, 다가오고 있지 않은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만, 눈물이 났다. 그들은 백사장 위에서 검은 가루로 녹아내리고, 피 묻은 그들의 눈알들이 곧 내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피묻은 눈알들이 내 몸 주변에 모여들었다. 소녀가 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자장가를..” 소녀는 나의 말을 못 들었는지 무시한건지 모르겠지만 곧 내 몸엔 눈알들이 스친 자국들이 남기 시작했다. 눈알이 스친 자국들은 크레파스처럼 내 몸과 얼굴들을 덧칠하듯 가리고 있었다. 더 이상 망할 바다조차 보이지 않을만큼 내가 있는 지점을 까맣게 덧칠하고 있었다. 나는 너무 나는 나 너무 무서워서 너무 무서웠기 때문에, 그들이 하지만 무서워서 무서웠다. 소녀는 스스로의 을·손·손·을 어·끌·끌·어 내 눈을 가렸다. 곧 나는 편안해졌고 더 이상 떨지 않았다. 노래는 어느새 Alcest의 Souvenirs D’un Autre Monde이 흐르고 나는 더 이상 울지도 않았다.
 
다시, 호텔의 방
그 말을 그렇게 동시에 내뱉었을 때, 조그만 기린 두 마리는 창 밖에서 설렁설렁 그들의 곁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가느다란 실로 연결이 된 종이컵 전화기를, 각자의 손에 꼬옥 쥐었다. 이렇게 서로 안고 있는데, 이렇게 서로 살아내고 있는데, 그들의 손에는 공허한 종이컵만이, 다 부서지도록, 하얀 음영의 굴곡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소녀가 하얀 종이컵의 내부에 대고 말했다. 그 이야기는, 그대로 끝인가요? 종이컵 너머로 귀를 기울이던, 그가 대답했다. 아니. 끝일지는, 역시 아무도 모르는 거겠지요.
 
햇빛 끝이 창문을 녹이듯, 점점 더 진하게 서로의 눈동자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소녀의 눈동자가 그대로 태양에 타들어갈까 봐 걱정되어서 왼손을 들어 소녀의 눈가를 가려주었다. 음악은 thom yorke의 analyse가 흐르고 있었다.
 
소녀가 자신의 손으로 그의 손을 내리고 태양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곧 소녀는 눈길을 그에게로 돌려, 종이컵을 자신의 입가로 들어올렸다. 잠깐 종이컵이 산소호흡기라도 된 듯이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쉬고는, 종이컵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입과 입의 공간
입 속의 치열과 혀들이 상하좌우 상황을 파악함으로써 아주 예민하게 키스를 한다. 혀들은 비행 활주로처럼, 결국 어떤 건축과도 같은 붉은 생각들의 구조물이 구축된다. 그들이 넣은, 다시 입으로 나오는 냄새들과 몸의 특정 부위들에 꽂힌 침들은 사실 서로를 괴롭게 하고 있다. 이것은 어떤 광학적인 전기적 현상이기도 하다. 붉은 가전제품들이 잔뜩 전기를 소모하고 있다. 감정은 모터에 연결된 것처럼 저릿하게 그들을 여며온다.
 
사과향이 방 안 가득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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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Ⅲ)

댓글 0 | 조회 1,821 | 201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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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모자이크(Ⅱ)

댓글 0 | 조회 1,231 | 2013.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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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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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의 1층 아무도 없는 호텔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20세기 초의 미국. 시간에 엑스레이를 찍는 직업이 있었다. 소들과, 알 수 없는 짐승의 먼지 쌓인 뼈들을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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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몇몇 여자들에게 미안함을 안고 살아가야한다. 허세, 조작, 이기가 엉켜서 나 스스로도 통제 못하던 때가 있었다. 나를 연출하는 것은 나의 처세가 되었었…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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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 조회 1,712 | 2013.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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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주였다. 내가 사는 플랫의 인터넷이 일주일 남짓 먹통상태일 때였다. 일주일 내내 플랫메이트들을 볼 때마다 얘기를 했다. 난 인터넷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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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 빛

댓글 0 | 조회 1,244 | 2013.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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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탈

댓글 0 | 조회 1,498 | 2013.02.13
몇 년만에 아픈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심하게 아픈 것은 군대 이후로 처음인 것 같은데, 지금이 조금 더 심한 것 같다. 3일 째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계속해서… 더보기

어디에나 있는, 어디에도 없는

댓글 0 | 조회 1,490 | 201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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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이스트처치 기행 메모

댓글 0 | 조회 1,391 | 201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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