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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음악시간

0 개 1,451 박건호

다음 주까지 각자 음악적인 재주 하나를 가져오면 되는거야. 중학교 시절, 미치광이로 유명했던 음악 선생이 말했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어렵다며 불평불만, 투덜투덜거리며 각자의 귀갓길로 흩어졌다.

다음 주의 음악시간. 나는 이미 등교를 할 때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기타를 메고 갔기 때문이다. 음악시간이 되기도 전에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기타를 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실력이었지만 어쨌든 치기는 쳤다. 그리고 기타를 친다는 것에 대해서, 굉장한 주목과 리액션들을 의도치 않게 이끌어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각자 자신의 목소리를 준비해왔다. 음악책에 나오는 노래를 주로 불렀고, 한두 명의 아이들이 피아노를 쳤다. 나는 당연히 기타를 쳤다.

그 뒤로, 저는 기타를 칠 줄 압니다. 라고 하면 한국인들은 리액션이 참 크다. 그렇게 리액션이 클 정도로 잘 치진 않기에 나로선 조금 미안한 일이다.

저는 기타를 칩니다. 라고 하면, 뉴질랜드 사람들의 리액션은 나는 드럼을 칩니다. 나는 피아노를 칩니다. 등등의 대답들이 참 많이도 나온다. 어디서 배웠어? 고등학교에서 배웠지. 라고 하면, 문득 난 충격에 빠진다. 한국의 음악 시간에 악기를 친 것으로는 단소, 리코더 정도 밖에 생각에 나지 않는다. 방과 후 시간에 사물놀이를 했다면 모를까, 음악시간에 뭘 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음악 시간에는 책을 세워들어야 했었다는 것이다. 그래야 허리를 펴고 노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음표를 읽는 법, 그리고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만 계속해서 불렀었다.

음악시간에 우리는 남이 적어준 것을 보고 노래를 했다. 악보를 읽는 법 외에는 전혀 주체적이지 못한이 짧은 수업시간은, 중간고사 등의 시험기간이 닥치면 자습시간으로 변모하곤 했었다. 노래를 부르는 일이든 악기를 연주하는 일이든 어느 쪽이 생산적이라고 말을 하진 않겠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악기를 하나라도 연주할 줄 안다는 것은, 훗날 여가의 주체자로서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우리 윗세대를 보면 의미를 좀 더 알 수 있다.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모두 다 노래를 하는 것을 즐기시고, 모이면 하시는 것이 가무(물론 음주가 곁들여진) 아니던가. 하지만 혼자서 노래를 부르는 일은 드물다. 그래서 보통 혼자서는 TV를 본다거나, 다른 사람들과 수다를 떤다거나, 고스톱을 치는 노인들이 대부분인 것이다. 아니면 역시 한국인답게, 일을 한다.

적어도 내가 다녔던 한국의 학교는, 어떻게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야 할지 절대 가르쳐주지 않았다. 오로지 인간의 기본적인 소양과 교양에 집중하며, 더불어 어떻게 경쟁에서 이겨야하는지, 결과적으로는 대학에 가기 위한 점수만을 위한 교육을 했었다. 개인적으로 혼자 있으면 뭘 해야 할지, 혹은 여가 시간에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기성세대를 보면 답답하고 안타깝기 그지없는데, 그 뒷세대인 내가 다닐 때도 학교는 더하면 더했지 변한 게 없었다. 기본적인 공교육에서부터 개개인을 경쟁의 소모품으로 여겨지게끔 만들고, 그것은 사교육 열풍으로 이어진다. 이윽고 그렇게도 목 놓아 외치던 대학에 가서는 소모품의 허무를 소비로 풀며 다시 취업을 하려는 사람들의 틈에 줄을 선다. 그 뒤로는 돈 버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투기를 한다. 땅값은 오르고, 여가시간의 음주문화들은 밤마다 분출된다.

한국에서, 음악시간에 책을 세워 들고 모두가 같은 노래를 부르는 그 시간에 지구의 다른 편에서는 각자 다른 악기를 하나씩 들고 각자의 파트를 연주하며 더불어 사는 멜로디를 자연스럽게 익힌다. 물론 모든 학생들이 다 교육이 이끄는 방향을 따라갈 순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방향성이 어디를 가리키고 있어야 하는지는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현재의 한국에서 주체가 될 수 없는 삶의 비극은, 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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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 조회 1,490 | 201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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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이스트처치 기행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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