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얼굴

0 개 1,360 박건호
영화 <접속>, <공감>, <8월의 크리스마스> 등등. 수많은 애틋한 만남들과 우연을 가장한 필연과 미필적 대본 속 우연들이 교집합되어 소통의 부재와 해소의 극적인 드라마를 나타낸 90년대,  2000년대 초반의 한국의 노스텔지어 영화물들이다. 난 이 영화들을 좋아한다. “커피 같은 것”과 함께 이 영화를 계속해서 보고 있으면 “커피 같은 것의 향”이 조금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랄까.

언젠가는 비슷한 느낌의 노스텔지어가 될-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은 내가 혐오하는 매체들 중 하나다. 이것들은 나를 끔찍하게 얽매고 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은 나른하게 고양이처럼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다. 앞서 나열한 영화들을 본다거나, 조용히 있고 싶을 때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 나른함을 깨는 연락들이 꼭 있다. <뭐하세요?> <뭐해요?> 등등, 내가 뭘하는지 참 궁금해 한다. 난 내가 뭘 하는지 알고 있으므로 내가 뭘 하는지 궁금하지 않다. 그러므로 씹는다. 그러면 영화 속 한석규는 허허허 웃고, 유지태는 지나간 과거의 기록에 불과한 연인에게 애틋한 감정을 표정으로 지어낸다.

누군가를 대할 때 상대방에 대한 신비감, 혹은 호기심을 잃는 것만큼이나 무서운 일이 또 있을까.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연락이다.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다. 지금 나 혼자 있는 방이,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북적거리는 느낌.

새벽 2시에 전화와서 뭐하냐고, 나오라고 하는 아이. 새벽 4시에 카톡을 100개 가까이 날려 다음날 읽어보면 본인 힘든 거 알아달라는 얘기(한 문장을 5개의 말풍선에 쪼개 보내는 건 도대체 왜인지 모르겠다) 일을 하기에 전화를 꺼놓기도 그렇고, 최근엔 할 말이 있으면 제발 이메일로 보내라고 하고 있다.

누군가와 항상 접속 상태가 유지되어 있다는 것은 관계에 있어서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 줄곧 삐삐를 들고 다니던 한 연예인이, “누군가가 위급한 상황이나 내가 마지막 통화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내 이기심 때문에 못할 수도 있다. 그 사람이 필요할 때 내가 없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더라.”는 이유로 핸드폰을 구입했다고 한다.

문제는 저런 상황이 아닐 때, 접속 상태의 편리함을 남용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견디거나 고독을 즐기는 방법을 너무도 쉽게 잊어버렸다. 외로우면 누군가를 찾고, 굳이 만나지 못하더라도 얼굴도 못 본 채 하는 대화를 조그만 액정화면 속에서 이어가려고 한다. 그것은 그들을 더 외롭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더 외롭게 만들고 싶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나도 더 외로워지고 싶지 않기에 만남을 최대한 줄이려한다. 그들은 모른다, 혹은 모른는 것처럼 행동을 한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비어가는 자신을 모르고, 그 비어가는 자신을 불현듯 깨달을 때마다 채우려 애쓰는 자신의 모습이 정말 외로워보인다는 것을 모른다. 애시당초 비어있는 채로 완성된 고독이란 단어를 왜 채우려하는지. 차라리 심심해서 가끔 불러낸다면 이해하지만, 외로움을 알아달라고 불러내고 막상 만나 대화가 순간적으로 끊겼을 때 곧바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슬픈 영상. 그 영상 안에는 만남이 가지는 애틋함도 낭만도 아무 것도 없다. 해후의 순간을 잃어버린 사회란 너무도 끔찍한 일이다.

그렇게 수많은 대화 장치를 어느 때보다 화려하게 보유하고 있으면서, 또한 어느 나라보다 더욱 화려하게 보유하고 있는 한국이란 나라는 정작 힐링이 유행이다. 대화로 모든 것을 풀 수 있을 것처럼 떠들어대던 이들이 왜 힐링이 필요해 질만큼 외로워졌는지. 물론 힐링이 필요한 이유는 조금 더 복합적일 것이지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소셜 네트워크의 극대화와 힐링의 유행이 동시에 이뤄지는 나라”는 조금 이상하다.

21세기 들어서, 수많은 얼굴들이 있다. (이름도 FACEBOOK이다) 수많은 얼굴들이 각자 자신에게 맞는 각도와 조명을 찾아 스스로를 찍어내어 올린다. 연예인 가십지 넘겨보듯 남들의 진심인지 아닌지 모를 성격과 남들이 봐줬으면 하는 한 얼굴의 고민들을, 또다른 얼굴들은 밥을 먹으며 똥을 싸며 훌훌 넘겨본다.

이젠 오래된 영화에서나 보고 그리워하는 그 때처럼, 꼭 연인이 아니더라도 만남 그 자체에 애틋한 낭만을 갖고 싶다. 아주 오래 전처럼, 그 사람들의 얼굴들을 실제로 보고 싶다.

화이

댓글 0 | 조회 2,327 | 2014.02.25
영화 <화이>. 다섯 명의 아빠 중 한 명인 석태가 아들 화이에게 말한다. 괴물이 두렵다면 괴물이 되거라. 괴물이라는 생명체에 대한 믿음은 순수성의 증… 더보기

서바이벌

댓글 0 | 조회 1,727 | 2014.02.12
지금은 묻혀버렸지만, 작년 11월쯤 한국의 엠넷에서 작곡가 서바이벌을 주제로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었다. 티비를 안 보아서 홍보의 여부는 모르겠지만, 4회 만에 … 더보기

한국에서

댓글 0 | 조회 1,765 | 2014.01.30
2년 만에 한국에 다녀왔다. 인천공항의 분위기는 여전했다. 부산스럽지만 깔끔한, 이용자의 동선을 최대한 고려하여 만든 회색빛의 거대한 이동체. 사람들은 세포처럼 … 더보기

모자이크(Ⅲ)

댓글 0 | 조회 1,827 | 2013.12.24
호텔의 방. 창가 태양의 광선이 대기를 통과하고, 산란된 빛의 파장은 곧게 흩어져 호텔의 창가에 곱게 내려앉아있다. 먼지들이 빛의 언저리를 떠돌고, 창틀에 반쯤 … 더보기

모자이크(Ⅱ)

댓글 0 | 조회 1,232 | 2013.11.27
호텔 앞의 해변 아침에 일어나 담배 연기같은 차가운 태양이 빛나는 바다를 보았다. 빨간 투명함이 내리쬐는 백사장엔 무덤 하나가 있었고 그 위의 크림빛 소녀는 고개… 더보기

모자이크(Ⅰ)

댓글 0 | 조회 1,258 | 2013.11.12
호텔의 1층 아무도 없는 호텔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20세기 초의 미국. 시간에 엑스레이를 찍는 직업이 있었다. 소들과, 알 수 없는 짐승의 먼지 쌓인 뼈들을 … 더보기

지느러미

댓글 0 | 조회 1,458 | 2013.10.22
1. 나는 몇몇 여자들에게 미안함을 안고 살아가야한다. 허세, 조작, 이기가 엉켜서 나 스스로도 통제 못하던 때가 있었다. 나를 연출하는 것은 나의 처세가 되었었… 더보기

피곤한 고양이

댓글 0 | 조회 1,704 | 2013.10.08
영화학과 출신이라는 것은 좋은 일이다. 대학시절, 학과 공부는 잘 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영화와 관련된 종합예술에 있어서만큼은 -조금 편협하긴 해도- 나름대로 공부… 더보기

칼럼

댓글 0 | 조회 1,714 | 2013.09.24
칼럼. 칼럼이란 것을 쓴 지 1년이 되었다. 그 뜻은 내가 여기 온지 1년이 조금 넘었다는 뜻일 것이다. 2012년 6월 초순, 워킹홀리데이라는 비자로 뉴질랜드로… 더보기

이사

댓글 0 | 조회 1,904 | 2013.09.10
저번 주였다. 내가 사는 플랫의 인터넷이 일주일 남짓 먹통상태일 때였다. 일주일 내내 플랫메이트들을 볼 때마다 얘기를 했다. 난 인터넷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 더보기

Boy A

댓글 0 | 조회 1,401 | 2013.08.28
초록빛 눈이 오는 날이다. 회개하기 위하여 떠나기가 쉽지가 않아 흔들흔들거린다. 너를 떠날 수 있는 날, 그리하여 다시 너를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년은 늘 … 더보기

너의 스위치였다

댓글 0 | 조회 1,653 | 2013.08.14
딸깍. 열리는 암실의 문. 외면하고 싶은 현실은 때때로 순간을 아름답게 포착해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아름다운 포착은 시간을 초월한 채 머리 한 켠에 걸어지는 … 더보기

카페

댓글 0 | 조회 1,986 | 2013.07.23
17살. 나는 카페에 자주 갔었다. 스타벅스, 카페베네 등의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오기 전이었던 시절 이야기다. 가게의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2층에 있었던 그… 더보기

풋내기의 솔직한 노래

댓글 0 | 조회 1,556 | 2013.07.09
예전부터 “왜 그렇게 사람이 빡빡해요?”라는 말을 종종 들어왔다. 팍팍하다는 말은 다양한 의미의 관용구로 해석될 수 있으나, 나의 경우에는 … 더보기

외롭고, 의존적인 사람들

댓글 0 | 조회 5,776 | 2013.06.26
나는 산책을 좋아한다. 보통 잠이 오지 않으면 가까운 바닷가로 나가 혼자 돌아다니다 오곤 한다. 핸드폰은 꺼두고 엠피쓰리만 켜두고 이곳저곳 쏘다닌다. 그런데 그것… 더보기

자기소개서

댓글 0 | 조회 1,554 | 2013.06.11
본의 아니게 대학원에 입학하려는 사람의 자기소개서를 도와주게 되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대학원이 뭐하는 곳이었는지 헷갈릴 정도로 충격적인 초고를 이메일로 … 더보기

생산자와 소비자의 시의성에 대하여

댓글 0 | 조회 1,420 | 2013.05.28
기차에서 피가 났다, 레일에서 피가 굉음을 내며 흐른다. 줄줄줄줄줄줄줄줄 흐른다 Medina의 You and I를 듣는다. I feel like. I’… 더보기

허세

댓글 0 | 조회 1,402 | 2013.05.14
내가 다녔던 대학교에는 커다란 잔디밭이 있었다. 오월의 광장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는데, 광장이 가져다주는 어떤 암울한 느낌을 5월이라는 봄 냄새 가득한 단어로서 상… 더보기

음악시간

댓글 0 | 조회 1,455 | 2013.04.24
다음 주까지 각자 음악적인 재주 하나를 가져오면 되는거야. 중학교 시절, 미치광이로 유명했던 음악 선생이 말했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어렵다며 불평불만, 투덜투… 더보기

현재 얼굴

댓글 0 | 조회 1,361 | 2013.04.10
영화 <접속>, <공감>, <8월의 크리스마스> 등등. 수많은 애틋한 만남들과 우연을 가장한 필연과 미필적 대본 속 우연들이 교집… 더보기

소리

댓글 0 | 조회 1,439 | 2013.03.26
바람결에 흔들리는 투우사의 망토와도 같은, 서걱거리는 심장이 있었다. 영혼의 텍스트들이 두터운 긴장감으로 다다다다닥 머릿속을 훑어내고, 가느다란 담배연기가 시간 … 더보기

적과 빛

댓글 0 | 조회 1,248 | 2013.02.27
그 일은 2011년 3월 중순 너무도 갑작스레 일어났다. 일종의 컨설팅 회사가 내가 다니던 대학교를 한 번 다녀갔고, 이틀 뒤 한 강사 분이 우리에게 소식을 전해… 더보기

배탈

댓글 0 | 조회 1,500 | 2013.02.13
몇 년만에 아픈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심하게 아픈 것은 군대 이후로 처음인 것 같은데, 지금이 조금 더 심한 것 같다. 3일 째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계속해서… 더보기

어디에나 있는, 어디에도 없는

댓글 0 | 조회 1,494 | 2013.01.31
1.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찍은 단편영화: 늦어도 2월까지는 편집 완료! 2. 랭귀지 스쿨에서 한국말 가르치기: 교재 제작! 3. 정착: 워크비자 준비할 것! 4. … 더보기

크라이스트처치 기행 메모

댓글 0 | 조회 1,393 | 2013.01.15
1. 백패커. 나는 1층에 있었고 호주에서 왔다는 한국인은 2층에 있었다. 그는 침대 위에서 무언가를 먹고 있었고, 머리 위에 있는 할로겐 조명을 켠 채 노트북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