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증명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어떤증명

0 개 2,173 박건호
어느날 바닷가 주변을 친구와 걷고 있을 때, 지붕이 없는 스포츠카 한 대가 지나갔다. 나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바닷가 근처인데, 한국과는 달리 아무 것도 없었다. 배 몇 척, 갈매기들, 멋진 단독주택들 뿐이었다. 횟집 앞에서 꼬질꼬질한 앞치마를 두른 채 호객을 하는 아줌마들이라든지, 멋대로 배치된 알록달록한 비치용품들의 이름 없는 가게들도.. 아무 것도 없었다. 그냥, 그냥 두서 없는 바닷가였다. 두서없이, 나와 길을 걷고 있던 친구에게 물어봤다.
 
뉴질랜드 부자들의 삶은 어떤 삶이야?
 
그 친구가 대답하길, 그냥 나보다 좀 더 바쁜 사람들이지 뭐. 라고 대답했다. 질문을 이해를 못 했나, 싶어 네가 생각하는 부자들의 삶을 시간대 별로 대답 해 보라고 부탁했다. 8시? 일어나지. 9시? 일을 나가겠지. 12시나 1시? 점심먹겠지. 5시나 6시? 아마도 부자니까 일을 하겠지. 밤 9시? 그 때쯤엔 퇴근을 하려나.. 잘 모르겠네. 일을 더 하려나? 부자니까? 부자니까. 한국 영화 <돈의 맛>에서는, 부자는 그저 거대한 건축물에 스스로를 봉인한 채, 자신들끼리 히히덕거리고, 업무는 여러 대의 휴대폰 중 그 날 맘에 드는 하나를 골라 해결하고, 다시 자신의 방에 딸린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다가, 마음에 드는 하인을 안고 잠이 드는 생활을 한다.
 
한국의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이 한국에서 살기 힘든 2층 저택에 거주하며, 의사, 변호사, 재벌 2세들이 무슨 시간이 그리 많은지 연애하고 바람피우고 할 거 다 한다. 그리고 그것이 드라마적 비약이라 해도, 대부분의 대중들은 그러한 것에 환상을 품는다. 또한 환상과 함께 열등감을 품은 채, 돈 많은 사람의 뒤에서 개처럼 벌었을 것이라 수군대는 것이다. 그것이 한국 국민의 90%는 못 되도 80%는 될 것이다.

바닷가에서 대화를 나눈 친구는 분명 그저 그런 뉴질랜드의 중산층 워커, 19살 소녀였다. 부자에 대해 딱히 환상을 갖지 않고, 그저 돈을 벌다보면 집을 사게 될 거고, 결혼을 하고, 해외여행을 가고, 즐기는 것. 그러면 된 거 아니야? 그녀가 말했을 때, 무척 당황했다. 한 명만을 보고 전체 사회를 가늠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꼴에 모럴 해저드 따위를 나불대며 족집게 논술 강의를 하며 돈을 벌었던 한국에서의 내 모습과는 다른 것이었다. 19살. 그래 그 나이 또래 학생들을 가르쳤었다. 하지만 이 친구는 앞으로의 자신의 인생을 너무나도 당연하고 당당하게 얘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뭐가 되고 싶은데? 그냥 난 지금 내가 다니는 직장(보험회사)이 좋아. 5시에 퇴근하고, 여름 겨울 휴가 나오고. 19살에.. 되고 싶은 게 없는 아들 혹은 딸. 한국 같으면 부모가 무척 걱정스럽게 생각했을 녀석이다. 또 보통은 한국 사회에서는, 되고 싶은게 없다는 것을 당당하게 이야기하지도 못한다. 그것은 야망과 포부가 없다는 뜻이며, 때로는 불효로 인식되기까지 한다. 이 친구 직장이라고 해봐야-보험회사지만- 한국으로 치면 파트타임, 즉 알바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알바로 살아가는 것은 용납되지 못한다. (활짝 웃으며 자랑스럽게) 요번에 우리 아들은 대기업 취직했지 뭐에요- 댁 아들은 요즘 뭐해요? (활짝 웃으며 자랑스럽게) 편의점 알바요....이런 상황이 되지 못한다는 얘기다. 물론 여기도 대기업이 있겠고 꿈의 직장이 있겠지만, 그 갭의 차이가 한국과는 너무도 크다는 것이다.
 
그 갭의 차이 -내가 건너온 태평양의 무게쯤 될까- 와 더불어, 그 친구와의 대화가 내게 시사해 준 것은, 내가 지금까지 야망에 눌려 인생을 잃지는 않았냐는 질문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현실에 꿈이 이리저리 뒤바뀌고, 그 환상을 좇아 이리저리 유영하는 삶. 누군가에선 행동력 있다 하고, 어딘가에선 능력있다 소리를 들을 것이다. 하지만 아주 먼 훗날, 결국 자신의 텅 빈 공허를 술로 완성하려 하는 중년이 되어 버린다면, 이제 더 이상 유영할 힘도, 유흥할 힘도 없다면, 그 때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즐거운 삶이었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결국 우리는 같은 곳으로 가고 있다. 그 사실에 대해 항상 반추하며 살고 싶다. 그리고 즐기는 것을 증명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게 일에 대한 노력이든, 사랑에 대한 노력이든, 스스로 끊임없이 내 안에 공명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또한, 혹은, 살고 싶었다는 것을- 여기 와서 깨달았다. 그리고 이 글은, 뉴질랜드에서의 내 첫 번째 증명이 되었다.

외롭고, 의존적인 사람들

댓글 0 | 조회 5,775 | 2013.06.26
나는 산책을 좋아한다. 보통 잠이 오지 않으면 가까운 바닷가로 나가 혼자 돌아다니다 오곤 한다. 핸드폰은 꺼두고 엠피쓰리만 켜두고 이곳저곳 쏘다닌다. 그런데 그것… 더보기

치과 (Ⅰ)

댓글 0 | 조회 3,687 | 2016.04.29
N과 함께 밥을 먹는데, N이 요즘 따라 자꾸 볼살을 씹는다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는데, 양치를 하러 갔었던 N이 달려와 플래시를 켠 핸드폰을 건냈다. 사… 더보기

담배

댓글 0 | 조회 2,698 | 2014.03.26
담배를 피운지는 조금 되었다. 미성년자를 벗어나기전부터 피웠으니 꽤 오래된 셈이다. 내가 좋아하게 되면 으레 그렇듯, 조금은 극단적으로 파고들었다. 담배가 신제품… 더보기

작업기 (Ⅰ) 작곡의 시작

댓글 0 | 조회 2,625 | 2014.05.13
음악 그 자체를 동경해왔었다. 이런 소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저런 소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냥 소리가 각자 다르다는 것이 신기했다. 책상 구석의 똑같은 … 더보기

작업기 (Ⅱ) 알 수 없는 인생

댓글 0 | 조회 2,596 | 2014.05.27
내가 곡을 쓰는 방식은 사실 굉장히 간단했다. 가사를 주욱 써 놓고, 기타로 코드를 하나씩 잡다가 맘에 드는 코드 진행 방식을 찾는다. 그리고 흥얼흥얼거리며 가사… 더보기

파랑과 검정

댓글 0 | 조회 2,554 | 2016.03.24
인식이 색깔을 바꾼다.아주 어렸을 때, 내게는 스물네가지 색깔을 가지고 있던 크레파스가 있었다. 그 중 몇 개의 색깔을 닳도록 사용하고는 했는데, 그 중 하나가 … 더보기

댓글 0 | 조회 2,459 | 2016.02.25
무뎌진 발 뒤끝의 아릿함. 침대 위에서 내려오던 내 발 뒤꿈치도.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던 옷가지들도. 방 안 가득 베어있던 담배향들도. 익숙한 손가락의 까칠함에 … 더보기

B 에게

댓글 0 | 조회 2,401 | 2015.11.12
안녕하세요. 동갑이지만, 매우 친한 사이이지만, 이번 편지에서는 말을 높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오로지 편지를 쓸 때의 제 문체 성향 탓이니, 우리 사이가 멀어… 더보기

작업기(Ⅵ)- 발매 그리고 사기

댓글 0 | 조회 2,362 | 2015.05.27
초심을 찾기까지 아무런 곡을 작업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었다. 12월, 1월, 2월이 지나갔다. 긴 크리스마스 휴가와 왕가누이 여행, 부모님의 방문 등 그 사이에 … 더보기

화이

댓글 0 | 조회 2,327 | 2014.02.25
영화 <화이>. 다섯 명의 아빠 중 한 명인 석태가 아들 화이에게 말한다. 괴물이 두렵다면 괴물이 되거라. 괴물이라는 생명체에 대한 믿음은 순수성의 증… 더보기

江(Ⅸ)

댓글 0 | 조회 2,249 | 2015.08.13
물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잠이 든 다음 날 아침. 쓰레기통이 된 두 개의 배럴. 배럴 사이로 흐르는 습기와 강의 물냄새. 아침 산바람에 뒤척거리는 노란 텐트. … 더보기

욕망

댓글 0 | 조회 2,242 | 2015.12.10
사실 욕망이란 잃었을 때, 비로서 서서히 그 욕망의 실체를 드러낸다. 거기까지 썼을 때, 카페 안으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깊게 눌러쓴 검은 캡 모자, 닳아빠진 … 더보기

식물과 생각

댓글 0 | 조회 2,229 | 2016.01.28
8월부터, 웰링턴을 떠나 여기에 온 후 많은 식물을 재배하고 있다. 고추, 애호박, 피망, 해바라기, 토마토, 가지.. 주로 먹을 것들인데, 이는 돈을 조금이라도… 더보기

거미집(Ⅰ)

댓글 0 | 조회 2,219 | 2015.12.22
약 혹은 총기류를 쓰지 않는,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자살의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목을 매는 자살인 교사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투신의 방법. 노인… 더보기

자녀들의 나이 값을 쳐주는 부모

댓글 0 | 조회 2,208 | 2015.01.14
너무 되바라진 아이들을 보면 사실 인상이 써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국인 특히 한국부모이기 때문인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른들이 있는 곳에서나 공공장소에… 더보기

리더의 조건

댓글 0 | 조회 2,202 | 2015.11.26
초등학교 4학년 때, 나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반장이 되었다. 그 때는 반장이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 학급회의를 주재하고, 선생님이 없을 때 아이들을 조율하고. … 더보기

금연

댓글 0 | 조회 2,192 | 2014.10.15
큰 원이 있는 방 안에서, 남자는 턱을 괸 채 곰곰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고동색 책상을 앞에 둔 채 검은 의자 위에 앉아 멍하니 촛불 너머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 더보기

치과 (Ⅱ)

댓글 0 | 조회 2,183 | 2016.05.11
N의 동동거리던 발이 움직임을 멈춘 것은 의사가 주사바늘을 N의 입 속에서 뺀 이후였다. 기절했나? 나는 고개를 기웃거렸지만, N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각도였… 더보기

현재 어떤증명

댓글 0 | 조회 2,174 | 2012.09.26
어느날 바닷가 주변을 친구와 걷고 있을 때, 지붕이 없는 스포츠카 한 대가 지나갔다. 나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바닷가 근처인데, 한국과는 달리 아무 것도 없었다… 더보기

자존감 (A면-타인과의 비교 그리고 화)

댓글 0 | 조회 2,165 | 2015.09.24
화가 난다. 그것을 틱낫한은 이렇게 표현했다. 온 몸 가득 독이 퍼진 것이라고. 독이 퍼진 것을 알아달라는 표현이니까, 상대방은 화난 사람에게 연민을 가져야 한다… 더보기

댓글 0 | 조회 2,145 | 2015.10.15
어처구니 없는 일을 겪었다. 어처구니없다, 라는 말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처구니 없다, 라는 것은 감정의 한 종류니까요. 제가 지금 감정이라는 것을 가질… 더보기

작업기 (Ⅲ) 요괴의 기다림

댓글 0 | 조회 2,121 | 2014.06.25
원래는 화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가만히 무엇인가 보는 것을 좋아했었습니다. 구름을 입에 문 새들이 태양 근처로 날개를 퍼덕이는 모습, 나뭇잎을 습관적… 더보기

댓글 0 | 조회 2,104 | 2014.04.23
또 비가 온다. 일주일 넘게 햇빛을 보지 못하고 살고 있다. 비가 오면 떠오르는 시간 몇 가지가 있다. 아주 어렸던 16살에, 나는 독특한 패션으로 거리를 쏘다녔… 더보기

안경

댓글 0 | 조회 2,083 | 2016.02.11
오빠가 사라졌다.안경이 너무 오래도록 보이지 않아 이상한 느낌에 오빠의 방에 가보았다. 퀴퀴한 냄새와 함께 냄새에 비해 꽤 정갈한, 빛이 들지 않는 방이 눈에 들… 더보기

도박

댓글 0 | 조회 2,061 | 2014.08.27
예전에 한국에 있을 때, “바다이야기”라는 곳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물고기처럼 지느러미를 파닥파닥거리며 버튼을 누르고 있었고, 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