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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거의 이십 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렇게 잘 치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 듣는 노래도 악보를 두고 꾸준히 연습하면 썩 들어줄 만큼 연주할 정도는 된다.
악기를 하나 정도 배워둔다는 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좋아하는 노래를 내 손으로 연주할 수 있으니까, 같은 단순한 이유뿐만이 아니다. 그것 자체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하나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말, 표정, 행동 같은 원초적인 것이 아닌, 2차적이지만 훨씬 심오하고 섬세하며 즐거움과 아름다움까지도 제공되는 방식으로 (물론 그 즐거움과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비춰질지는 미지수지만).
연주는 그것을 행하는 사람의 심정과 기분을 반영한다. 다른 무수한 예술적 매개체들이 그러하듯이. 감정은 예술의 자양분 어쩌구 하는 지고한 명언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분명하다.
어렸을 때 뭣 모르고 피아노 교습을 받는 것에 OK를 해버린 후, 거의 몇 년간 나는 교습을 받으러 가거나 연습을 해야 할 때면 죽을 상을 지었다. 매일매일 꼬박꼬박 몇 시간씩 의무적으로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에 그 나이 때도 꽤나 불쾌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그럴 때면 엄마는 늘 이런 말로 나를 달랬다.
“나 피아노 싫어! 안 할 거야!”
“1년이나 배우고 그만두려고? 너무 아깝지 않니? 조금만 더 배워보고, 그래도 싫으면 그 때 가서 멈춰도 늦지 않아.”
“…… (수긍)”
그리고 다시 2년 후 내가 불평을 하면 똑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것이다.
“피아노 치는 거 너무 힘들어! 그만둘래!”
“3년이나 배워 놓고는 아깝잖아. 이제 곧 바이엘도 졸업인데, 계속 해서 체르니까진 해봐야지.”
“…… (납득)”
이런 식으로. 그리고 이렇게 엄마는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도 피아노를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데에 성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천만다행인 일이지만. 감사합니다, 어머니.
손을 써서 뭔가를 창조해내는 것은 지극히 짜증스럽고도 자괴감 드는 과정이다. 뇌와 손의 조정력(co-ordination)이 영 맞지 않는지 생각과 손가락이 따로 놀고, 항상 내 동작은 충분히 빠르거나, 강하거나, 부드럽지 않다. 그리고 나온 결과물은 늘 기대에 못 미치는 것뿐. 어쩌면 피아노를 그만두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렸을 때도 스스로에게 바라는 것이 많은 아이였고,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치를 떠는, 지극히 유별난 꼬마였다.
피아노를 가르쳤던 교사들과 마음이 맞지 않았다는 것도 한몫 했으리라. 거의 기억에 남아 있진 않지만, 나를 가장 오랫동안 가르쳤던 선생님은 유치원생 때부터 뉴질랜드로 이민을 오기까지 내게 개인 교습을 해주었다. 화장이 짙어서인지 무척 예뻤는데, 특히 안젤리나 졸리 못지 않은 도톰한 입술이 인상 깊었다. 새빨갛게 칠한 그 입술이, 내가 실수를 할 때마다 짜증 섞인 말투로 꾸중을 했었고 그것에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는 것 밖에는 뚜렷이 떠오르는 것이 없다.
뉴질랜드의 고등학교에서 나는 선택 과목으로 음악을 골랐고, 따라서 필수 피아노 교습을 받아야 했다. 처음엔 내키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나를 가르치게 된 선생님은 매우 친절했고, 게다가 인내심도 매우 깊었다. 나는 처음으로 악기를 다루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피아노의 묘미를 깨달은 것은 열 여섯 살 때쯤이었다. 멍하니 손가락을 움직이다가 그 부속지들을 보고 불현듯 알게 된 것이다. 손가락들이 뇌에서 내리는 명령에 어떻게 부합하는지. 얼마나 세게, 또는 약하게 건반을 누르는지. 그리고 그 모든 세세한 조종에 이 악기는 어떤 소리를 내는지. 나야. 이건 오로지 내가 만들어내는 거야. 가히 Epiphany라 할 수 있는 대발견이었다.
앞으로도, 피아노를 꾸준히 연습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