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더플라워 - 향과 맛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엘더플라워 - 향과 맛

0 개 9,993 한얼
누구에게나 사람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어떤 플레이버(flavour) 보다도 단박에 자신을 사로잡는, 무슨 맛을 제일 좋아하세요? 라고 물어보면 제일 먼저 떠올라 바로 대답으로 나오는 그 것. 슈퍼마켓에라도 가게 되면 혹시 그 향이 들어간 음료나 간식은 없는지 늘 찾게 되고, 그리고 혹시라도 발견하게 되면 매우 기쁘고, 굳이 살 필요가 없더라도 한참을 서서 바라보게 되는 것.
 
나한테도 그런 약점 같은 향이 있다. 바로 엘더플라워(elderflower)다.
 
한글로는 딱총나무 꽃이라고 하는 것 같지만, 그 이름은 그다지 예쁘지도 않을 뿐더러 영문 명칭에 더 익숙해진 내게는 엘더플라워라는 이름이 훨씬 편하다. 아무래도 ‘딱총나무’와 ‘엘더플라워’는 천지차이니까. 하지만 왜 굳이 이 꽃이 피는 나무를 딱총나무라고 표현했는지는 이해가 간다. 

엘더플라워는 아주 작고 새하얀 꽃이 무더기로 피는데, 이 꽃을 따서 시럽을
만들거나 와인을 담근다고 한다. 제철에 꽃을 따서 깨끗이 씻은 후, 설탕과 물과 기타 향료들을 섞어 푹 담과 두는 것이다. 그렇게 두면 향이 액체로 옮겨가 진한 음료가 완성된다. 주로 여름에 많이 마신다고 하던데, 아마도 이 꽃이 주로 여름에 피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그렇지 않아도 엘더플라워 특유의 상큼하고 꽃답지 않은 향은 겨울보단 더운 날씨에 더 잘 어울리지만.
 
새콤한 향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 내가 왜 유독 이 향에 집착하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언젠가 읽었던 단편 소설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그 소설의 주인공은 애인과, 그리고 여러 명의 아이들과 함께 동거하는데, 어느 날 그는 식구들을 이끌고 장을 보러 갔다가 문득 엘더플라워 시럽을 보고 우뚝 멈춰서 버린다. 그것이 상기시키는 어린 시절의 달고 쓴 추억과, 여전히 엘더플라워 향이 나는 주스를 마시는 현재의 행복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을 사려고 손을 뻗지만, 키가 작은 탓에 닿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새 뒤에서 살며시 나타난 애인이 그것을 대신 집어 들어 카트에 넣어주고 미소를 보낸다 (이 소설의 제목과 작가의 이름은 안타깝게도 기억해 낼 수 없었다).
 
사실 그 전까진 엘더플라워라는 것의 존재조차 몰랐던 내가, 이 소설을 읽고 받은 충격은 꽤 신선한 것이었다. 세상에, 꽃을 먹는단 말이에요? 그것도 음료수로 만들어서? 물론 우리나라에도 화전처럼 꽃을 식용하는 문화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로맨틱한 저의가 내포된 꽃 음료라니, 당장이라도 마셔보고 싶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과 지금의 애정을 이어주는 고리! 꽃을 통째로 먹는 것과는 다른, 오로지 순수한 향만을 뽑아내 즐기는 것! 달콤한 향수를 마시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낭만적이지 않은가. 게다가, 꽃은 일반적으로 먹는 식용품이 아닌 만큼 더더욱 시도해 보고 싶었다.
 
그날 부로 열심히 엘더플라워 향이 나는 시럽을 찾아보았건만, 별 소득은 없었다. 언제나 충실한 구글에게 물어본 결과로는 뉴질랜드에서도 그것을 판매한다고 했었지만, 찾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주류업소에도 가보고, 슈퍼마켓에도 가 보았지만 없었다. 나는 무척 실망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발견은 의외의 장소에서 찾아오는 법. 처음으로 내가 엘더플라워 시럽을 발견한 건 다름아닌 시티의 수입품 전문 업체였다. 비록 300밀리리터 남짓한 작은 용량에 이십 달러를 호가하는 고가의 물건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기꺼이 구입했다. 그리고 집으로 가져와 물에 타서 마셔보았다. 생각했던 것보단 덜 달콤했지만, 그런 경험이 없는 나조차 아련한 추억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익숙해지는 것, 그래서 늘 똑같은 것만 고집하게 되는 것. 엘더(elder)라는 말답게, 엘더플라워는 지속성의 맛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무하전

댓글 0 | 조회 1,275 | 2013.07.23
정말 좋아하는 화가의 전시전이 있어 다녀왔다. 화가의 이름은 들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로, 대표작으로는 <… 더보기

떠난다는 것과 머무는 것

댓글 0 | 조회 1,399 | 2013.07.09
6월의 끝자락에 도착한 한국은 매우 후덥지근하고 더웠다. 입국 심사를 마친 후 가방을 찾기 위해 걸어가면서 가장 먼저 느낀 감상은 그것이었다. 생각보다 더 덥네.… 더보기

Scars, scars into stars

댓글 0 | 조회 1,140 | 2013.06.26
덜렁거려서인지 또는 둔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자주 다치는 편이다. 하다못해 계단을 올라갈 때도 발을 헛디뎌서 미끄러지거나, 책을 읽으면서 모퉁이를 돌다가 허… 더보기

음악에 관한 (아마도) 첫번째 이야기

댓글 0 | 조회 1,320 | 2013.06.12
없인 살 수 없는 몇 가지 중에 음악이 있다. 물론 누구나 음악을 듣고 즐기긴 하겠지만, 내 경우엔 음악은 조금 더 특별하다고 자부하고 싶다. 음악은 마치 산소처… 더보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과시적 고통

댓글 0 | 조회 1,099 | 2013.05.28
약 두 달 전부터 허리가 아팠다. 처음엔 그저 욱신거리는 정도였지만 이제는 평소에도 지끈거린다. 특히 앉았다 일어날 때. 으으윽! 그 짜릿한 통증이라니. 이루 말… 더보기

차근차근, 우주적으로

댓글 0 | 조회 1,148 | 2013.05.14
주말에 시간이 남아, 모처럼 브라우니를 만들기로 했다. 나는 아주 신이 났다. 계란과 버터는 미리 꺼내두어 냉기를 제거해 두고, 양철 그릇과 주방용 저울과 재료들… 더보기

우정과 허망 사이

댓글 0 | 조회 1,081 | 2013.04.23
가끔 생각하곤 한다. 이십 대를 갓 넘긴 주제에 사람 관계가 하루살이의 하루만큼이나 덧없다는 사실을 아는 건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그렇다고 해서 물론 내가 … 더보기

종이에 대고 외치기

댓글 0 | 조회 973 | 2013.04.10
코리아 포스트에 450자짜리 수필을 연재하기 시작한 것도 벌써 10개월이 지난 것 같다. 1년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다. 시간 관… 더보기

Tea - the drink of my heart

댓글 0 | 조회 1,129 | 2013.03.26
매일매일 즐기는 날마다의 일과 중에 차를 마시는 것이 있다. 다도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거창하거나 엄숙한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티타임&rsquo… 더보기

Piano - about music

댓글 0 | 조회 1,238 | 2013.03.13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거의 이십 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렇게 잘 치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 듣는 노래도 악보를 두고 꾸준히 연습하면 썩 들… 더보기

어느 해 겨울, 등교길

댓글 0 | 조회 1,314 | 2013.02.27
겨울의 등교길은 언제나 머릿속에 남아 있다. 매일매일의 시작이 똑같기에 한 덩어리로 엉겨 거대한 공이 되어 버린 식으로, 겨울 아침들은 그렇게 일체화되어 구분할 … 더보기

시네마 - 은막의 마력

댓글 0 | 조회 1,027 | 2013.02.12
언제 가도 즐거운 장소 중엔 영화관이 있다. 동네의 비교적 작은 영화관도, 시골 구석의 박물관 같은 시네마도, 최신형 기계들과 대형 스크린을 갖춘 번화가의 영화관… 더보기

스마트폰 - 디지탈과 아날로그

댓글 0 | 조회 1,187 | 2013.01.31
디지털의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변화를 거부하고 ‘전화는 통화와 메시지만 보낼 수 있으면 장땡’이라고 여기던 내게, 얼마 전 커다란 변화가 일어… 더보기

동물들 - 우리의 친구

댓글 0 | 조회 1,233 | 2013.01.16
동물 애호 사상이 강한 서양권 국가에 살고 있는 만큼, 거리를 걷다 보면 동물을 데리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자주 띈다. 주로 개나 고양이들이다. 크고 작고, 털이… 더보기

Going Out

댓글 0 | 조회 1,154 | 2012.12.24
나는 바깥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즐기지 않는다. 내향성인 것이다. 여러모로 훌륭한 히키코모리의 기질을 타고 났다며 빈정거릴 지도… 더보기

회색 도시 - 향수(Ⅱ)

댓글 0 | 조회 1,068 | 2012.12.11
그렇게 안간힘을 다해 겨우 오르막길을 올라왔건만, 그 위에 있던 풍경은 나를 허탈케 했다. 언덕 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잠시 내가 잘못 찾은 건 아닌가 싶었다… 더보기

회색 도시 - 향수(Ⅰ)

댓글 0 | 조회 1,097 | 2012.11.28
2008년, 나는 가족 방문을 위해 한국에 와 있었다. 겨울이었고, 매우 추웠다. 눈은 오지 않았지만 금방이라도 그럴 것처럼 흐린 날씨였다고 기억한다. 예전에 살… 더보기

현재 엘더플라워 - 향과 맛

댓글 0 | 조회 9,994 | 2012.11.13
누구에게나 사람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어떤 플레이버(flavour) 보다도 단박에 자신을 사로잡는, 무슨 맛을 제일 좋아하세요? 라… 더보기

내 마음의 든든함

댓글 0 | 조회 1,791 | 2012.10.24
<강철의 연금술사>의 작가인 아라카와 히로무는 자신의 단행본에서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국립 도서관을 가지고 싶다고 말했다. “책! 원 … 더보기

레몬 나무 - 행복의 상징

댓글 0 | 조회 1,998 | 2012.10.09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것들 중에 레몬 나무가 있다. 물론 빈약한 나무는 안 된다. 적어도 몇 년은 묵어서 완전히 크게 자란 것, 해마다 한 번은 열매가 주렁… 더보기

Keep Calm and Carry On

댓글 0 | 조회 2,357 | 2012.09.25
좋아하는 문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 원래 영국에서 세계 2차 대전 동안에 국민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프로파간다로 쓰이던 슬로건이었는데, 재발견되어 새롭게 … 더보기

완벽과 자기 만족에 대하여

댓글 0 | 조회 1,475 | 2012.09.11
나는 그다지 여성스러운 편이 아니다. 외모를 가꾸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관심도 없다. 학교에 츄리닝을 입고 가거나 하는 일은 일상다반사다. 화장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