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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영화관

정경란 0 2,439 2013.08.13 14:02


뉴질랜드만큼 노인들이 극장을 찾는 일이 자연스러운 곳도 없는 듯하다. 게다가 그 극장이라는 곳들이 리딩 시네마처럼 최신식의 설비를 갖춘 곳을 제외하면, 처음 건축될 당시에 유행했던 아르누보 스타일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오래된 극장을 찾는 재미도 솔솔하다. 
 
와인 잔이나 커피 잔을 들고 상영관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팔걸이 한쪽에는 음료나 접시를 놓기에 충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처음 웰링턴의 펜트하우스라는 극장에 갔다가 다른 사람들이 음식이나 포도주잔을 들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부러웠던 나는, 다음엔 나도 저래봐야지, 하고 마음먹기도 했다.  

연금수령자들이 주된 고객들이라, 상영되는 영화의 절반은 추억의 명화들이다. 뉴질랜드에서는 노인들이 부자고 젊은이들은 가난하다고 한다. 극장에 가보면 이 말을 실감할 수 있다. 그들은 시간과 돈이 있다. 가족 혹은 연인과 근사한 30년대 풍 극장에서 와인 한잔 들고 영화를 본다. 부러운 풍경이다.

그렇다고 해서 관람객이 많은 것도 아니다. 한번은 친구와 함께 벼르던 영화를 보러 갔다. 상영관에 들어가니 우리 두 사람 이외 딱 한사람이 더 앉아있었다. 홈시어터처럼 넓은 화면, 널찍한 공간을 세 사람이 독차지하고 영화를 즐겼다. 이런 일은 그 후로도 몇번 더 겪게 된다. 어떤 경우는 나와 동행인만 영화를 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고도 영화관이 문을 닫지 않고 계속 영업하는 걸 보니 속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물론 금요일과 주말에는 사람들로 붐빈다. 앞서 말한대로 주로 노인들이다.

영화역시 한국 같으면 좀처럼 상영할 기회가 없을 유럽의 영화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 핀란드 영화로 기억한다. 이제는 시력을 잃어버려 고민을 담아 보내는 신자들의 편지를 읽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신부님. 그런 신부님을 돕기 위해 여성 죄수가, 일종의 사회봉사 명령을 받고 파견된다. 언니에게 늘 상습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형부를 몸싸움 끝에 살해하게 된 여성. 누구도 믿지 않고 냉소적인 그녀는 신부님에게 편지를 읽어주다가 더 이상 신부를 찾는 편지가 오지 않자, 상심한 신부님을 위로하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편지처럼 들려준다. 그리고 비로소 ‘용서’를 생각하게 된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한적한 핀란드의 교외 풍경, 인상적인 도자기형 벽난로, 그리고 습하고 냉한 핀란드의 공기가 오감을 자극하는 듯 했다. 

아르누보풍의 건축 양식을 가진 아담한 극장에서 전혀 다른 세계에 노출되는 경험을 한다. 영화를 보면서 포도주를 홀짝 거리는 것에 아직 익숙치 않다. 딱 한번 시도해봤다. 내 경우, 영화보는 데 방해만 되었다. 오징어라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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