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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중고가게 순례기

0 개 1,777 정경란

한국에서는 중고가게를 가지 않았다. 주변에 없기도 없었거니와 ‘중고를 산다’는 것은 자동차에만 해당하는 특별한 구매 행위였지, 자잘한 소품이나 옷을 사는 행위는 아니었다. 뭔가 필요할 때, 구매가 필요할 때, 우리는 ‘마트’를 떠올리지, 중고가게를 떠올리진 않는다. 물론 중고가게가 있긴 있다. 각 지방단체에서 운영하는 재활용센터. 몇 번 가보았으나 상당수의 물건들이 거의 새 제품값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럼 중고 살 바에야 새 것 사지 누가 남이 쓰던 물건을 사겠는가.

먹성보다는 입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나라. 남이 입던 옷? 계절마다 쇼핑몰에 신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세계 패션을 선도한다고 해도 거짓이 아닐 만큼 패션에 민감한 한국인들. 웰링턴에서 만나는 아시안들은 크게 중국계나 동남 아시아계 정도로만 구분할 수 있는데, 유독 ‘저 사람은 분명 한국사람’이라고 꼭 집을 수 있는 경우는 대개 그들의 세련된 입성 때문이다. 굳이 멋을 부린 게 아니어도 스타일이 난다. 이런 나의 선별 기준은 틀린 적이 없다. 그리고 이런 기준은 나 뿐만이 아니라, 이곳 키위들의 기준이기도 하다.

사실, 구세군 상점에 진열되어 있는 옷들을 보자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옷을 돈 받고 팔다니...하는 생각을 들 정도다. 그래도 늘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 또 이런 중고가게다. 소비와 더불어 기부가 같이 이루어지니 양심에 체면도 선다. 이런 중고가게에서 가장 이문이 남는 구매는 바로 책이다. 한국에서도 더러 이태원에 중고영어책을 사러 다니긴 했지만 대개 5~6천원선이었고 인문교양서는 만원을 훌쩍 넘기기도 했지만 여기 중고가게에서는 어린이책은 50센트부터 1달러, 소설이나 기타 교양서들은 2~3달러에 살 수 있다.




번역작업을 하다보면 작업도서 내용 중 인용되는 책들이 나온다. 그러면 그때마다 정리해 놓는다. 그렇게 정리해 놓은 도서목록에 있는 책들을 중고가게에서 만나면 횡재한 기분이 든다. 그것도 1달러에. 도서관은 또 어떤가. 매년 구입도서는 늘고 공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웰링턴 시티 라이브러리에서는 처분할 도서들을 역시 1달러씩 판매한다. 비소설은 4달러.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모은 책들이 꽤 된다.

한번은 St. John 샵에 갔다. 계산대 한편에 전집으로 보이는 책들이 상자 안에 놓여 있었다. 언뜻 보아도 오래된 책들이었다. 들춰보니 영국 (엄밀히 말하면 스코틀랜드) 출신의 작가인 월터 스콧의 25권 소설전집이었다. 1887년 에딘버러에서 출판된 것으로 진한 청색의 표지는 다소 색이 바래 있었다. 짐짓 무심한척 물었다. ‘이거 얼마예요?’

내가 앞서 이것 저것 구매를 해서 그런지 맘좋게 생긴 할머니 자원봉사자는 흘낏 쳐다보더니 ‘한 5달러면 괜찮을까?’ ‘... (흥분되어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감정을 추스림.)’



그래서 월 듀란트의 <철학 이야기> (1957년도 판)과 함께 5달러에 얻어왔다. 그리고 특수 약품을 이용해 표지를 닦았다. 진한 청색이 되살아났다. 웰링턴의 바다같은.

중고가게에서 주로 책들을 사들이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표지를 닦고, 먼지를 털고, 쓰다듬고, 또 두툼한 오래된 종이들을 넘겨보는 일이 잦아졌다. 활자의 잉크가 지면에 압착되면서 남기는, 미세한 우툴두툴한 촉감은, 책이 더이상 눈으로만 읽는 ‘정보전달매체’가 아니라 오감을 통해서 겪을 수 있는 ‘역사’가 되고 있다.

아이들 책은 횡재 중에 횡재다. ‘이거 한국에서 사면 만 육천원인데, 이게 2달러?’ 그래서 지른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보는 눈이 있기 때문에 부지런해야 한다. 그래서 매일 꾸준하게 가게에 들르는게 좋다. 그래서 점심 먹기 전, 산책 삼아 동네 중고가게 서너 곳을 둘러본다. 산책 삼아갔다가 너무 많이 사는 바람에 집에 돌아가서 차를 몰고 와야 할 때도 더러 있었다. 학교 바자회에서 팔다가 남는 책들도 대개 그 지역 구세군상점에 기부된다. 이집트 고고학, 세계의 역사, 자연, 동물... 그것도 최근에 출간된 듯한 두툼한 양장본도 1달러. 허겁지겁 상자 속을 헤집고 득템한다. 그런 날은 머리가 부르다. 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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