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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2년 전 어느 그룹전에 전시되었던 필자의 작품이다. 지면상으로는 크기를 가늠하기 힘든데, 2400mm x 1200mm의 크기를 가진 상당히 크기가 있는 사진이다. 사뭇 무작정 보기 좋을라고 크게 만든 듯 생각 할 수도 있지만 그 크기가 작품의 의도에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작품에 쓰인 원본 사진은 실제 작품으로 완성되기 상당 기간 전에 촬영 했었던 사진이다. 작품 속의 이미지를 보고 있자면 아무 의심 없이 Frucor (V 음료수를 판매하는 음료 회사) 에서 자사의 V 음료수 광고를 직접 어느 허름한 건물 벽에 그려서 한 듯 하다. 하지만 사실은 Frucor에서는 작품 속에 나오는 건물 사진에 마치 실제로 그린 것처럼 V 음료수 이미지와 텍스트를 합성하여 만들어진 이미지를 광고로서 빌보드에 개재했었다. 필자는 지인들과 파넬로 소소한 출사를 나갔다가 이리저리 둘러 보아도 특별히 사진에 담을만할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가 그나마 “이 광고 나름 재미있네”라고 생각하며 빌보드를 사진으로 남겼었다. 그리고는 그 사진은 필자의 기억 속에서 점차 희미해져 갔고 다른 수 많은 사진들이 그렇듯이 필자의 하드 드라이브에서 조용히 잠자고 있는 한 장의 사진이 되어버렸다.
필자는 다른 특별한 작품 아이디어가 없을 때 옛 사진들을 종종 꺼내어서 보고는 한다. 이는 보통 사람들이 종종 생각이 날 때마다 먼지 쌓인 앨범을 꺼내 들고 사진들을 보며 회상에 잠시 잠기는 것과 비슷하기는 한데 그 이상의 의도도 가지고 있다. 사람의 기분, 생각, 환경, 그리고 관심사 등이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항상 흐르는 물처럼 시간과 함께 변화가 있기 때문에 꼭 특정 추억이 담기지 않은 사진이라도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꺼내어 보느냐에 따라 사진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차이가 나게 되어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로 필자는 종종 옛 사진들을 꺼내어 보는데 이 작품에 쓰인 사진도 그렇게 다시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
필자가 이 작품에 쓰인 사진을 다시 꺼내보았던 시점이 마침 이 작품의 주된 의도에 관련된 생각들을 많이 하던 시기였고 또 해당 사진을 발견하지 못하였다면 아마 작품을 위해 따로 비슷한 사진을 찍었으리라 생각한다. 사진의 실제 원본은 완성된 작품과 상당히 차이가 있는데 실제 빌보드는 필자의 눈 높이 보다 훨씬 높게 위치해 있던 터라 Low Angle 샷이었고 이 때문에 빌보드 안의 이미지는 형태가 일그러진 마름모꼴이었다. 필자는 후보정 작업으로 일단 기하학적 형태를 완전한 직사각형으로 보정하고 빌보드 이미지만 따로 잘라내었다. 그 후에는 빌보드 인쇄에 쓰이는 PVC 자재에서 오는 반사를 최소화 시키기 위하여 여러 가지 보정을 하였다. 이 다음은 이 이미지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의도에 맞게 작품으로 제작하는가 였는데 작품의 의도 중 한 가지가 사진의 속임수에 관한 것이었고 그러하다 보니 인쇄는 실제 빌보드와 같은 PVC에 하였다. 하지만 크기조차 실제 빌보드와 동일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는데 필자는 빌보드의 밑판이 Plywood를 여러 장 이어 붙어 만들었다는 것에 착안하여 그 비율을 그대로 가져오되 크기는 작게 줄이기 위하여 한 장의 Plywood에 PVC에 인쇄된 이미지를 씌우기로 정하였다. 이로서 필자는 V 음료수 광고를 갤러리라는 공간 안에 가지고 들어 올 수 있었다. 완성된 작품 그 어디에서도 빌보드를 사진으로 촬영한 이미지인지 알기가 어렵지만 필자는 아주 조그마한 힌트를 주기 위해 실제 광고가 빌보드에 씌워져 있었을 때 있었던 오른쪽 하단의 PVC 구김살을 일부러 지우지 않았다. 항상 어디서나 가끔은 소소한 발견들이 새로운 재미를 주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