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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훨씬) 전에 꼭 해야 할 일

김영나 2 2,909 2012.08.29 11:54
옛날에는 사형수가 교수형을 당할 때 물통, 그러니까 bucket 위에 올라서면 목에 오랏줄을 걸었다고 합니다. 물통을 발로 차기만 하면 사형이 집행되는 것이지요. 그런 행위에서 유래된 말이 Bucket List인데요,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을 말합니다. 삶과 죽음이 얼마나 친근한가요. 물통 높이밖에 되지 않습니다. 30cm 안팎이나 되려나요. 설사 30cm가 안되더라도 발이 땅에서 약간만 떨어져도 목에 줄이 옭아 매어지면 대롱대롱 매달려 죽는 것이지요. 한 평생 목숨 걸고 지켜온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 사랑, 돈, 명예, 권력, 욕망, 열망 - 발길질 한 번에 저 세상이네요.
 
하필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사형수 발 밑에 놓여 있던 ‘bucket’에서 유래된 ‘Bucket List’라니 별로 유쾌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바꿔봤습니다. 바구니 옆에 끼고 나물 캐던 찬란한 봄날의 꿈 - ‘Basket List’로.
      
시간이 좀 흘렀습니다. 내 글을 사랑해 주시는 어느 독자분께서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써보면 어떻겠냐고 하셨지요. 그런데 차일피일 미루었습니다. 나는 죽음과 맞닥뜨린 적이 있었으니까요, 또 마주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실, 죽음의 신이 내 주위를 맴돌면서 꿈 속에서도 나타나 겁을 줄 때 난 공포에 질렸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우아하게 유언장을 작성하고 차분히 주변을 정리하고 그러면 좋으련만, 마음만 다급했습니다. 냉장고에 김치는 얼마나 남아 있지? 밑반찬을 좀 해놔야 될텐데. 볕 좋은 날 이불 빨래도 해놓고, 옷장도 정리하고, 통장에 몇 푼 있는 돈은 너무 적어서 누굴 주기도 그렇고---.
 
이웃 동네로 이사 갔을 때나, 한국에서 뉴질랜드로 이민 왔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정리할 것도 많고 여기저기 연락도 해야 하고, 새로 둥지를 틀 집이나 동네는 어떤지 마음이 싱숭생숭 해서, 한동안 맘을 잡지 못하고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서성거리지 않았나요.

하물며, 이승에서 저승으로 이사라니요! 내가 해결하고 책임지고 정리해야 할 일들, 아쉬운 일들이 한꺼번에 들고 일어나서 토네이도 바람을 만들어서 나는 패닉 상태에 빠지고 말았지요. 토네이도의 중심은 가족이었지요. 이 사람들을 두고 내가 어떻게 저승길에 나서나--- 눈썹에 눈물이 매달리곤 했지요. 눈을 감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이 이해되었어요. 그나저나 이승 사람들이 보고 싶어서 어떡하지? 일주일에 한번씩 술 한병 사들고 무덤에 오라고 할까. 바빠서 오기 힘들지도 모르는데, 너무 부담 주는 거 아닐까. 아, 왜 나는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처럼 가볍게 구름과 노을과 놀다가 하늘로 가지 못하는가. 

영화 ‘Bucket List’에서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은 시한부 환자였지요. 두 사람은 병원을 탈출해서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하나 해나갑니다. 세렝게티에서의 사냥, 문신하기, 카레이싱과 스카이 다이빙, 눈물날 때까지 웃어보기, 아름다운 소녀와 키스하기, 설산 등산 등등입니다. 한국 드라마 ‘여인의 향기’에서 연재(김선아 분)도 시한부였는데요, 죽기 전에 해보고 싶었던 일 20가지를 차례차례 해나갑니다. 하루에 한 번 엄마 웃게 만들기, 탱고 배우기, 나 괴롭혔던 놈들에게 복수 하기---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사람 품에서 눈 감기. 

영화나 드라마는 픽션이고 설정인 것이죠. 사실 시한부 환자는 여기저기 여행다닐 체력이 이미 증발했죠. 예쁘게 꾸미고 사랑을 찾아 나설 수 있는 기력이 남아있을리 있나요. 게다가 스카이 다이빙, 설산 등산이라뇨? 몇 개월 남은 생명마저 재촉하는 짓이죠. 아름다운 소녀와의 키스도 힘이 들고 감흥이 없을 거예요. 아주 조심스럽게 심신에 무리가 되는 일은 절대 피하고 체력을 비축하면서 간신히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시한부 환자가 해야 할 일이죠. 어쩜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할지도 모르고, 밥 숟가락 들 기력도 없어서 튜브로 음식물을 밀어 넣어야 할지 모르겠어요.엉덩이에는 아기 때처럼 기저귀를 차고 말이죠. 촛불은 어느 순간 휙 한 줄기 연기를 피우며 검은 심지만 남기고 꺼져 버린답니다.

기억하십시오. 의사가 다섯 손가락을 펴고 하나 둘 --- 남은 시간을 꼽을 때, 그때는 너무 늦습니다.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은 사실 ‘죽기 훨씬 전부터 해야 할 일’이지요.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의 사신이 온다면 그때는 편안히 쉬면서 사신과 사이좋게 동행할 일이나 의논해야지요. ‘죽기 훨씬 전부터 꼭 해야 할 일’을 메모지에 한 장씩 써서 바구니에 담아 두고 매달 한 장씩 추첨해서 꼭 해보는 건 어떨까요.

나의 ‘Basket List’ 에는 이런 메모지가 담겨 있습니다. 
 
1. 대륙 횡단 열차 타고 3일 정도 달리기; 열차에 도둑이 많아서 보디 가드가 반드시 필요하답니다. 
2. 탱고와 맘보 춤 배우기; 영화 ‘인도차이나’에서 까뜨리느 드느브와 그녀의 양딸이 추던 탱고에 필이 팍 꽂혔었는데, 알 파치노의 ‘여인의 향기’ 에서  탱고에 완전히 반해버렸죠. ‘아비정전’에서 트렁크 팬티 바람으로 맘보 춤을 추던 장국영도 잊지 못하고 있네요. 아, 근데 내가 몸치라서 참 걱정입니다. 
3. 들판에서 머리 감기;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로버트 레드포드가 메릴 스트립의 머리를 감겨주는 장면이 참 편안하고 아름다워 보였어요. 벌판에 울려퍼지던 모짜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네요.
4. 외할머니 산소 옆에서 하룻밤 자기; 습하고 추운 땅 속에 혼자 계신 할머니, 너무 외로우실 거예요.
5. 한옥 짓기; 제비 꼬리처럼 하늘로 날아올라간 추녀의 선이 아름다운 한옥에서 살고 싶네요. 연못에는 연꽃을 키우고 민물 고기들도 넣어줄 겁니다. 
6. 첫 키스 때로 돌아가기; 첫 키스 좀 잘해보고 싶군요. 
7. 보이차 묵혀두기; 보이차에서는 할머니에게서 나던 냄새, 할머니 맛이 나더군요. 
8. 아버지 걸음마 시켜드리기; 뇌경색증으로 잘 걷지 못하셔서 새 다리가 되셨어요. 
9. 세 자매와 엄마와 함께 여행하기; 여자끼리만 여행하면 넘 재밌어요. 
10. 겨울 설산에서 등산 하기; 눈 산에서 찬 오이를 먹으면 넘 맛나요. 내려올 때 방수 바지 입고 미끄럼 타면 엉덩이가 얼얼해요.
11. 중국 시안 진시왕릉 가보기; 용병들의 혼이 자꾸 나를 불러요. 
12. 각종 술 담그기; 매실, 산딸기, 칡, 솔방울, 오디 술 색깔 정말 예뻐요. 맛도 죽음이예요. 
13. 기생머리(가채) 해보기; 황진이, 매향이 헤어스타일이예요. 
14. 나는 가수다 방청하기; 김범수, 박정현, 윤도현 나왔을 때 했던 생각이예요. 
15. 강아지 고양이 여러마리 키우기; 순수한 아이들 보고 있으면 엔도르핀이 샘솟아요.
16. 쌍둥이 자전거 타기; 둘이 앞 뒤로 타고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들판을 달려요. 
17. 엄마에게 맛 있는 밥상 차려드리기; 여든이 다되어가는 엄마는 세상에 맛있는 게 점점 사라져 간다고 해요. 
18. 막내 여동생 싱글 탈출 돕기; 연애도 타고난 재주가 있어야 하나봐요.
19. 금강산 가보기; 일만 이천봉을 보고 싶어요. 당장 통일이 안되더라도 남북 교류는 이뤄져야죠. 나의 조국이 지구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사실이 넘 슬퍼요.
20. 모성애 풍부한 며느리 보기; 딸 같고 친구 같은 며느리, 더 중요한 건 모성애가 풍부한 며느리였음 좋겠어요. 모성애 없이는 남자들과 늙어가면서 살아가기 힘들죠. 이외수선생 머리를 곱게 빗겨주는 사모님을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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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은하수별
한국에 연정과 연민이 남아 잇군요. 이민 생활이 길어질수록, 나이 한살 더 먹을수록 더 그럴텐데.,., 더 시간이 가기 전에 하나씩 주머니에서 방울 꺼내듯 실행해 보세요. 멀리서 용기를 드립니다
ygna7
은하수별님! 안녕하세요?

생각해보니, 용기가 있어야 과감히 털고 일어나서 할 수 있는 일들이네요.
용기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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