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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넓고 음식은 많다

김영나 5 3,794 2012.08.14 17:17


지난 일요일, 3백여 개의 식탁이 차려진 곳에 초대받았습니다. 오클랜드 Food Show가 열리는 Greenlane  ASB Showgrounds였지요.  Food Show 장은 다양한 음식을 탐험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는데요, 손님들은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진 음식들 때문에 흥분을 억누르기 힘든 표정들이었습니다. 필자는 원래 낯선 음식에 대한 저항이나 부담은커녕 호기심이 강하게 발동하는 체질이었어요. 하여, 음식을 음미할 때마다 ‘천국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 행복했답니다. 



피조아 향이 상큼하게 감도는 Lothlorien의 피조아 와인으로 목을 가볍게 축이고 Barilla 사의 스파게티를 한 입 먹어봅니다. 달콤 새콤 상큼한 피조아와 토마토 소스가 궁합이 잘 맞네요. 첫 사랑 같은 풋풋한 피조아 향이 사라질 무렵  넬슨에서 온  Awaken Alive Energy 사의 에너지 바를 만났는데요, 네 가지 종류 모두 맛보았어요. 사과, 호두, 계피 / 살구, 캐슈넛 / 바나나, 구기자, 카카오 / 카카오, 대추, 헤이즐넛 입니다. 재료의 조합은 훌륭한데, 너무 달더군요. 사랑도 인생도 음식도 너무 달달하면 질리지요. 어쩜, 단 맛을 지우기 위해 술이 탄생한 것이 아닐까요. 일본 술집으로 건너가 사케를 홀짝 들이키고 발효된 누룩의 깊은 맛을 음미해봅니다. 쌉쌀하지만 감칠맛이 돕니다. 너무 달아서 힘들었던 에너지 바의 맛을 지워줘서 다행입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술을 빚는 장인이 경건한 자세로 밥을 짓고 발효시키는 과정을 시연하고 있네요. 부스 하나에도 일본인들의 성의가 돋보입니다.
 
만약 당신이 술꾼이라면  푸드 쇼가 더욱 행복할 거예요. 고주망태가 되는 일을 도와준답니다.사케를 가볍게 걸치고, Hawke’s Bay, Vidal, Maimai 등의 와인으로 2차를, Tuatara 맥주로 입가심하세요. 주의할 점이 있어요. 얼큰하게 취해 바람처럼 풀어지고 싶다면 Sovrano Limoncello의 레몬 술은 자제해주세요. 필자가 좋아라 하는 흑맥주를 시음하고 노란 레몬 술은 마셨는데요, 검고 노란 액체들이 내 속에서 무슨 색으로 변했을까, 절망과 희망이 함께 소용돌이치는 장면을 생각하니 갑자기 심각해졌어요. 사실 레몬 술은 그 색깔이나 맛이나 성분이 술을 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술을 깨게 만드는 듯 해서 좀 당황스러웠죠. 개나리, 병아리, 햇살처럼 노란 술은 ‘경고!’ 사인 같았답니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이 즐길 음식도 많았어요. 낙농국가의 푸드 쇼답게 유제품이 많았는데요, 요거트와 아이스크림, 치즈 부스가 부드러움과 달콤함을 마구마구 퍼줍니다. 인상적이었던 부스는 Clevedon Vally Buffalo Company였는데요, 영화 ‘늑대와 함께 춤을’에서 떼로 나왔던 버팔로 젖으로 만든 유제품을 선보였어요. 편견은 버려야 한답니다. 검은 도둑 같은 음흉한 버팔로는, 그러나 그 생각은 오만이랍니다. 버팔로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 순하고 착해 보인답니다. 게다가 그 하얀 젖이란, 순수의 결정체이지요. 버팔로 치즈는 야생의 맛이 조금 느껴집니다. 우리가 노린내라고 하는 맛인데요, 그 맛은 버팔로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벌판을 뛰어다니는 역동적인 맛이지요. 하지만 요거트는 한없이 부드럽고 감미가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에미 젖처럼--- . 모든 음식에는 그 제공자의 숭고한 삶의 자취가 숨어 있게 마련이지요. 우린 그것을 느끼고 고마워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지요. 



초대 받은 손님들이 차려놓은 음식에 손도 대지 않는다면 참 속상하겠지요. 그럴 때 주인은 두 종류로 나뉩니다. 무심코 오가는 손님들과 음식을 번갈아 쳐다보며 화난 표정을짓는 사람, 기왕 차린 음식을 알아주지 않으니 쟁반에 담아 손님들 앞에 나가 먹도록 권해보는 사람입니다. 인도, 이태리, 싱가폴 등의 음식이 현지인들에게 좀 낯설게 느껴진 듯 했어요. 주인의 얼굴이 냉냉해질수록 음식에서도 쌀쌀한 바람이 일고 사람들은 그 자리를 피하고 싶어한답니다. 흰 가운과 모자를 정갈하게 맞춰입은 세 남자는 Lewis Road Creamery에서 버터를 가지고 나왔는데요, 버터를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했지요. 세 남자의 미소와 따뜻한 정성이 더해져서 버터는 더 반지르르하고 노랗고 고소했답니다. 



마침내 반가운 식탁을 만났네요. 한국의 오뚜기, 한양식품, 종가집이 한데 모여 있더군요. 오뚜기에서는 마요네즈와 불고기 양념을 내놓고 불고기 시식을 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많이 몰렸어요. 불고기는 세계인 모두 좋아하는 한국 대표 음식이니까요. 한양 식품에서는 알로에 주스와 충북 옥천 포도를, 종가집에서는 김과 김치, 두부를 시식했는데요, 한국 부스에 사람들이 붐벼서 사진 찍기가 어려웠답니다. 큰 판넬에서는 장금이가 이 광경을 지켜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어요.

한국에서 몇 해전부터 인기몰이중인 휴롬 주서기도 부스에 나와 있더군요.저속으로 갈아주어서 영양 손실이 없다는 휴롬 주서기의 신제품은 주스와 찌꺼기가 배출되는 부분이 나눠져 있더군요. 두 개의 배출구를 생각해낸 한국인, 정말 머리 좋죠. 
 
4시간 남짓 푸드 쇼장을 돌면서 세상은 넓고 인종도 많고 음식도 다양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요. 음식 문화를 알리고 판매하기 위한 머리 싸움도 대단했습니다. 일본측 전략은 Kikkoman 간장에서 드러났어요. 역시 일본은 다른 문화를 자신의 문화에 끌어들여 재창조해내는 방법을 여지없이 적용했더군요. 간장에 깨와 생강을 넣거나 라임, 레몬 그라스 / 고추, 생강을 넣어 marinade & sauce로 팔고 있더군요. 뭐 거기까진 좋았는데요, 현지인의 반응을 더 끌어내려는 것이었는지 필라델피아 크림 치즈에 라임 레몬 그라스 소이 소스를 섞고 sour cream과  마리네이드 소스를 섞었더군요.부드럽게 중화된 맛은 좋았는데 원래 소스의 고유한 맛을 잃어버리게 했답니다.
 
사람들의 입 맛처럼 미묘하고 고집스러운 것이 있을까요? 사람들은 낯선 음식 앞에서는 머뭇거리고 긴장하면서 절대 손을 내밀지 않습니다. 정직하지 않은 음식에 대해선 더욱 단호합니다. 얄팍한 상술이라는 양념으로 범벅이 된 음식은 쓰레기 취급을 받게 됩니다.한식은 어떤 진정성을 가지고,어떻게 차별화 돼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요? 인삼, 밤, 대추, 쑥, 산야채 등을 이용한 약식동원(藥食同源; 약과 음식은 근본이 동일하다)의 한식 요리,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사찰 음식, 마이클 잭슨이 좋아했던 비빔밥이나 장금이의 요리 등 스토리가 있는 한류 음식은 어떨까요? 
 
푸드 쇼는 앞으로도 계속 발전 진화될 것입니다. 뉴질랜드는 물론 세계 각지의 푸드 쇼에서 한국 음식이 주류가 되어 인기몰이 할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 격려가 절실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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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zute76
3년전까지만 해도 푸드쇼 가고 했는데....먹고 살기 바쁘고...지방에 살다 보니 못 가게 되네요...종가집이랑 오뚜기, 힌양 등등 한국 업체가 보이니 반갑네요...종가집 부스 총각(?)은 제가 알기론 외국인인데...ㅎㅎㅎ..암튼 열심인 모습이네요..영어를 잘하니 선발된 듯...클리브돈은 굴로 유명한 곳인데 버팔로라...버팔로 보러 담에 놀러가고 싶네요...좋은 글과 정보 감사합니다. 내년엔 시간내서 가봐야겠네요..
ygna7
zute76님! 안녕하세요?

푸드쇼는 다양한 음식 문화를 보여주는 일 ,그리고 사람들이 그 문화를 수용하고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마케팅에만 치중하면 '푸드쇼'라고 할 수가 없죠.큰 수퍼마켓이나 다를 바가 없겠죠. 
내년엔 꼭 참가해서 즐기시길 바랍니다.
은하수별
한국인들이 음식에 대해서 배타적이지요..음식으로 입이 열린 사람은 마음도 쉽게 열립니다., -- 사실 제 경험이에요. 제가 어떤 나라의 음식이든 잘 먹거든요. 한국의 제조방식은 아주 우수한 것이 많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만 좋은 것이 문제라,.. 오늘 키위친구가 기침을 심하게 하면서 우리집에 놀러 왓다가 도라지청에 배시럽 넣은 차 한잔 마시고 기침이 그만  뚝.'  이런 음식은 왜 세계화가 안될까요? 다국적기업에 밀려서 아무도 엄두를 못내는 것 같습니다..
ygna7
은하수별님! 안녕하세요?
귀한 도라지청을 가지고 계시네요.
키위 친구가 감탄했겠네요.

도라지,배 중탕,생강,레몬들이 어느 감이약보다 더 좋은데, 참 어떻게 설명할 수도 없지요.
은하수별
키위 친구는 내가 숨겨놓은 보물 내 놓았는 줄 알아요. 기침이 멈추니 엄청 미안해하더라구요. 여기는 레몬에 꿀이지만 한국은 도라지+ 배+ 모과+ 은행..  요즘 같은 겨울에는 강추에요. 그것도 없으면 배에 꿀넣어서 중탕으로 다스리면서 살았는데 지난 달애 오는 방문하는 가족 편에 부탁했어요. 친구 말대로 꿀단지와 같은 보배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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