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고 볶고 끓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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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고 볶고 끓여주세요!

1 2,575 김영나
그보다 더 시끄러울 수는 없었다. 한국에 머무는 두어 달 동안 나는 왁자지껄한 소음의 소용돌이 속에 내던져졌다. 
 
3월, 핵안보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렸다. 몇날 며칠 한국이 지구촌 핵문제의 중심이라도 된 듯 요란했다. 

4월, 조선족 모씨가 20대 여성을 엽기적으로 살해한 사건이 발생해 온 나라가 울분으로 웅웅거렸다. 총선을 앞두고는 각 당들이 쇄신을 앞세우며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왈가왈부했다. 선거 운동이 시작된 이후에는 확성기 선거 유세가 온 동네에 왕왕거렸다. 곧 이어 임기 말년을 맞은 대통령 측근들이 속속 구속되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12월에 있을 대선 얘기로 시중은 점쟁이가 복채를 마구 흔들어 대 듯이 어지럽고 긴장되고 음흉했고 소란스러웠다. 뒤이어 미국 광우병 걸린 소가 음메 비명을 지르며 들이닥쳤다.
 
뉴질랜드에 돌아왔다. 이보다 더 조용할 수는 없다. 화단 구석에서 거미가 조용히 집을 짓고, 한국 가기 전 담가놓은 야채 효소들은 뽀글뽀글 발효되고 있었다. 선정적이지 않고 쇼킹하지 않은 뉴스는 싱겁게 느껴질 정도. 존 뱅크스의 도네이션 스캔들, 뉴질랜드 자원 매각 반대 평화 행진, 국민 61%가 국영 기업 매각 반대, 존 키 지지도가 63.9%, 이메일 소통으로 우편물이 줄어 우편 배달부의 감축을 고민하고 있다는 내용들이 최근 뉴스다. 렌트비가 너무 오르고 있다는 뉴스는 한쪽에서 피식 피어오르다가 푸념처럼 사그라질 뿐이다.

한국은 한 마디로 아수라판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아수라라는 귀신은 팔이 여섯 개다. 그래서인지 한국은 깜짝 놀랄 일들을 해내곤 한다. 지하철이 9호선까지 뚫리고 자동차, 건설, 조선, 가전 제품 분야는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스티브 잡스 사망 후 한국의 스마트 폰은 애플을 따라잡고 있다. 인천 공항이 ‘세계공항 서비스평가’에서 7년 연속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나쁜 일, 좋은 일 세계 1위가 너무 많은 한국이다.
 
얼핏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혼란스럽고 무질서가 판치고 부정부패도 심하고 언제라도 전쟁이 날 듯한 한국은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뭔가를 해낸다. 한편, 아무 불만도 문제도 없이 태평성대를 누리는 듯한 뉴질랜드는 맨날 그 밥에 그 나물이다.  
 
한국에서 나는 Oliv tv를 즐겨봤다. 요리 전문 채널이다. 야구선수 박찬호의 아내 박리혜의 내 가족을 위한 건강하고 맛있는 내조밥상, 이와사키 유카의 자연을 통째로 먹는 웰빙 식단 Macrobiotic Food, 가수 알렉스의 로맨틱 레시피 등을 즐겨봤는데 정말이지 맛있는 TV였다.  

요리는 먼저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를 맡고 입으로 먹으면서 3가지 감각을 만족시켜 주는 것이라 알고 있지만, TV 요리는 다르다. 눈과 청각을 쫑긋 세우고 촉각도 예민하게 반응해야 한다. 가령 오징어 요리라고 치자. TV 안에서 요리하는 이가 ‘살이 탱탱한 오징어를 골랐어요’, 하면서 살을 눌러보면 나도 함께 그 느낌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냄새 맡지 못하고 먹지 못하는 대신 눈으로 귀로 충분히 맛봐야 한다. 그래서 맛있는 요리 TV는 생생한 화질과 특수 오디오 시스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Olive tv가 그랬다. 달궈진 후라이팬에 식재료가 들어갔을 때 촤악 차르르, 찌개나 국이 끓을 때는 보글보글, 뭔가를 썰 때 또각또각 삭삭삭 탁탁탁, 믹서는 회오리치며 휘이잉, 식재료들의 영혼이 승천하는 듯 흰 나비처럼 피어오르는 수증기 등 귀와 눈이 즐겁고 바쁘다.

밭에서 갓 캐온 야채나 선홍색 피 빛깔의 날고기, 반짝이는 비늘의 생선들이 지지고 볶고 굽고 끓이는 동안 맛있는 요리로 변해갔다. 처음엔 무질서한 재료들의 혼합에 불과하지만 맛있는 소리와 함께 익어가면서 접시에 담길 때는 아름답고도 멋진 창조물이다. 그 때 눈과 귀가 맛보는 요리의 감흥은 남다르다. 삶도 이러해야 할진저!!!
 
어차피 인간은 동물의 한 갈래일 뿐이다. 게다가 머리마저 좋으니 어찌 혼란스럽지 않겠는가. 그러니 우리가 바래야 하는 것은 카오스의 바다에서도 익사하지 않는 창조성이다. 흙투성이 야채, 피 흘리는 고기, 지느러미 세운 생선을 적절하게 손질하고 카오스의 냄비 속에 넣어서 치열하게 불을 지펴서 멋진 요리를 탄생시키는 것처럼. 문득문득 솟구치는 창조적 작업이 아수라장 카오스 속에서도 인류를 지탱해온 힘이 아닐까?     

한국은 가스 불을 조금만 줄이고 뉴질랜드는 가스 불을 조금 올렸으면 좋겠다. 
 
AB
선율을 타고 미끌어지 듯 내려 갔는데 그만 중요한 끝 한줄이 나를 때렸다.

이런사람 저런사람이 있기에 (골치가 아플때도 많지만) 우리들의 조화로운 뜰이 있을 수 있으며, 피콜로 같은 예리한 금속성의 고음이 있는가 하면 콘트라베이스 같은 바닥에 깔리는 저음도 있어 소위 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출 되는바 어찌 이런 특성들을 배제하고 아무런 의미없는 세상을 동경하려 하는지?

나와 생김새나 성격이 꼭 같은사람들로 만 찬 세상, 비올라만 3-40개 있는 오케스트라…… 지옥이 따로 없을 것 같다.

천사와 악마가 공존한다는 이탤리가 동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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