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댁의 마음은 어디 계십니까?

김영나 2 1,990 2012.01.17 17:20
내 영역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한정되어 있어요. 동네 슈퍼마켓에서 먹거리를 사고, 집 앞 공원을 산책하고, 가끔 산을 찾고, 한글을 가르치러 이웃 동네로 넘어 가는 것이 고작입니다. 어떤 때는 목을 한번 쓰윽 만져보기도 한답니다. ‘내가 목줄에 매어 있나?’

그렇다고 마음마저 묶여 있을까요? 내 마음은 한없이 떠돌아다닙니다. 입맛이 없는 날, 소래 포구로 가서 알이 꽉 찬 꽃게를 샀지요. 뚝배기에 넣고 바글바글 지지면, 주황빛 알이 몽실몽실 피어납니다. 몇 마리는 게장을 담가 익힙니다. 내 마음은 게장 껍질을 딱 떼어내서 따끈한 밥을 넣어 비벼 먹고 내 몸은 뉴질랜드에서 군침만 삼킵니다. 꽃게가 나를 이렇게 불행하게 만들 줄이야!

비가 추적추적 왔다리갔다리 하는 날, 내 마음은 뉴질랜드 남섬으로 광속보다 빠르게 날아갔지요. ‘남섬’하면 크롬웰 과일 가게가 젤 먼저 생각납니다. 가도가도 끝없는 황량한 광야--- 누렇게 부황난 얼굴마냥 꺼칠한 풍경에 질려 있을 때 만난 놈들이 농익어 주체할 수 없는 절정의 기운을 내뿜는 살구랑 체리, 복숭아였죠. 서부 영화의 쌍권총잡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황무지의 죽은 색깔이 살구빛 체리빛 복숭아빛으로 그라데이션 되는 그때의 환희를 느끼고 싶군요.

마음이 공간만 이동하겠습니까? 교민지에 모교인 S여고 동창회 단신을 보고, 나는 여고 시절로 날아갔지요. 귀 밑 2센티 단발머리에 허리를 졸라매는 교복, 무거운 책가방, 끝없는 시험, 엄한 선생님들, 코피를 줄줄 흘리던 나날들. 게다가 주름잡던(?) 시절이었죠. 봄, 여름, 가을 내내, 하얀 상의 교복 벨트 아래 주름을 정해진 개수만큼 일정한 간격으로 다림질을 해가며 만들어야 했죠. 3년이나 했으니 지겨웠는데, 지금은 그 주름 잡는 일을 너무 하고 싶군요. 내 친구들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칼렛 오하라’ 뺨치게 허리를 졸라매고 똥배가 나온다고 설사약을 먹곤 했어요. 천둥벌거숭이 우리들 풋 사랑의 화살은 애맨 선생님 가슴에 꽂히곤 했죠. 나는 친구들의 연서(戀書)를 대필해주곤 상황이 심각해져 덜컥 겁이 나곤 했죠. ‘잠시만 저의 아그리빠가 되어주세요’ 글귀는 아직도 생생합니다. 석고상처럼 죽은 듯이 있어달라는 편지에 선생님께선 얼마나 난감하셨을까요? 세월은 환타지예요. 여고 시절은 신비의 빛을 발하는 수정이 되고, 나는 조금씩 조금씩 파괴되어, 모래알처럼 부스러져 내립니다. 가끔은 아그리빠처럼 멋진 선생님께 말도 안되는 편지를 긁적이고 싶네요.

몸에 있는 다리는 두 개지만, 마음에는 말미잘 촉수처럼 많은 다리가 있어요. 이리저리 나부끼고 휘둘리기 딱 좋지요. 사람이 행복할 때는 마음이 가까이 있을 때라고 합니다. 화장할 때나 목욕할 때 행복한 느낌이 드는 것은 마음이 자기 곁에 가장 가까이 있어서랍니다. 여자들 화장품 종류가 많은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마음이 심난할 때는 밭 일이 최고라는 지인의 말도 떠오릅니다. 호미 들고 30분 정도만 텃밭을 가꿔보세요. 잡초를 캐내고, 모종을 이리저리 옮겨 심고 지렁이가 튀어 나오면 오매나 놀라기도 하고--- 그러노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마음이 바로 눈 앞, 텃 밭에 있어서지요. 불가에서도 수행할 때 ‘코 끝을 보라’고 가르칩니다. 눈길 이르는 곳에 마음이 이르고 마음 이르는 곳에 기(氣) 또한 이르니, 마음을 가까이 두라는 것이지요.

“뉴질랜드에 사는 거 어때요?”

이 질문에 ‘좋다, 나쁘다, 그저그렇다’ 세 부류의 대답이 돌아옵니다. 지구 어디에 살고 있어도 똑같은 대답이겠죠? 우문(愚問)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을 저울질해보기 위해서 혹은 다잡기 위해서 확인해보는 것이지요. 혹자는 ‘살면 살수록 좋아진다’, 또 누구는 ‘지겨워 죽겠다’고도 합니다. 나는 ‘그저그래’라는 대답이 젤 맘에 들더군요. 좋은 것은 안좋은 것이지요. 마음이 들떠서 이리저리 나부끼고, 흥분되고 산란해지는 도거(掉擧) 상태가 되기 쉬우니까요. 반대로 나쁜 것도 안좋은 것이지요. 삶이 너무 지루하고 우울하고 의욕이 없어서 미치거나 죽을 것 같은 혼침(昏沈) 상태로 빠지기 쉬우니까요. 도거와 혼침, 둘다 마음을 잃어버린 상태지요. 그러니 사는 일이 아주 좋거나 아주 나쁘지 않고, ‘그저그런’ 것이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지요.

1월입니다. 올 한 해를 잘 보내기 위해서, 내 마음이 어디 있는지 찾고있지요. 가라앉아 있으면 끌어올리고, 붕 떠 있으면 끌어내려서 아름드리 굵은 통나무 다리 하나를 내 몸 곁에 깊게 박아놓아야 하는데---, 오늘도 온종일 도망다니는 말미잘 다리랑 싸움하다 지쳤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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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youngluv
Oh~ Excellent!
작가님의 글 매우 잘 읽었습니다. 저는 교복을 입지 않은 세대이나, 마치 내가 교복을 입고 청춘을 보낸것 이상.... 아련한 청춘을 그리워하게 되는 순간 입니다.
어제는 퇴근길에.. 귀가하여, 뭔가를 먹을까? 생각을 해 보았는데... 배가 고픔에도 불구하고..먹고 싶은게 없는 것 입니다. 스스로 의아해하며... 어머니가 늘 어린시절에 드시던 먹거리를 그리워하시는 맘 이해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작가님의 촉수, 잘 단도리 하시기 바랍니다.  ^^
ygna7
youngluv님! 맞아요. 배는 고픈데 먹고 싶은 것은 없고---기껏 생각해 낸 것이 지금은 구할 수 없는 것들이고---
아마도---입맛을 잃어서보다, 마음이 몸에서 떠나 있어서일 거예요.마음부터 찾아오세요. 그럼---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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