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죽을 놈의 낭만!? - 2. 소라, 동백, 고구마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얼어죽을 놈의 낭만!? - 2. 소라, 동백, 고구마

0 개 3,750 뉴질랜드 코리아타임스
가스 히터가 피식피식 푸헬헬 소리를 내다가 꺼져 버렸다. 하필 억수로 비가 쏟아지고 기온이 뚝 떨어진 겨울밤이었다.가난한 잡가(작가 아님)는 손, 발, 코가 시려웠다. 잡가는 비발디의 음악을 틀어 놓고 목에 가시 걸린 갈매기처럼 꺽꺽 울어 댔다. 추우면 왜 섭섭할까. 학생 때, 고단하게 집으로 돌아갔을 때, 연탄불이 꺼져 내 방이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한없이 울었다. 세상이 내게 36.5도를 유지할 만큼의 온기도 관심도 보태주지 않는구나,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이왕 눈물을 본 김에 할머니의 죽음, 박제가 되어버린 사랑, 두고 온 강아지를 생각하며 카타르시스를 즐길 무렵, 남편이 포부도 당당하게 상자를 들고 돌아왔다.

놀라거나 좋아하거나, 내 반응을 더 크게 느끼고 싶을 때 남편은 말이 없어진다. 남편은 판토마임 마술사처럼 상자를 열었다. 환한 빛이 쏟아지자 에어리언 같은 놈이 고개를 쑥 빼고 더듬이를 세우고 기웃기웃, 당혹해 했다. 눈도 없는데 막 움직였다. 정말 SF 영화의 소품, 아니면 마술쇼였다.

“어머머머머, 맙소사! 너 어떻게 여기 온 거니?”

킹왕짱 소라, 남편은 와인과 소라의 궁합을 기대하며 흥분했고, 나는 내 귀를 덮고도 남을 너그러움에 달떴다. 쪽빛 바닷물이 뚝뚝 뜯기는 소라를 들어 올리는 순간, 껍질의 작은 숨구멍마다 싱싱한 생명이 피어올랐다. 깨달음은 찰나에 오는 것일까. 마술처럼, 모든 절망적이고 쓸쓸하고 메말랐던 풍경들이 파릇한 물이 올랐다. 어쩜 요런 모양일까? 온 몸을 나선형으로 말아 올리다가 풍덩 빠져도 될 만큼 큰 확이 되어 너울너울, 주름치마처럼 열려 있는 소라. 소라의 나선에는 조화와 미적 감각의 최고 정수인 1:1.618의 황금비율이 숨어 있다. 소라여, 아름다운 소라여!

소라와 사랑에 빠져서 소라 귀와 내 귀는 뽀뽀한다. 솨아아 솨아아---수십 번, 수백 번 귀에 대보아도 소라는 어김없이 속삭인다. 세상, 많은 소리 중에서 소라는 자신의 소리를 찾아 공명하고 있는 중이라고. 아하, 부처님 헤어스타일(?)을 일컫는 말이 나발(螺髮), 소라 모양이다. 사부대중과 항상 공명하기 위해서 소라를 머리 위에? 내 멋대로 해석해 놓고 감탄한다. 부처님의 도량으로 이해해 주시길---.

소라여, 어떡하면 잘 공명할 수 있지? 세상과 당신과 나는.

"비바람이 사납고 바다가 검게 용트림 하던 날, 고양이가 내게 왔어. 생선 훔치는 일, 생선 통조림이 역겨워졌다고. 펄떡이는 생선을 잡고 싶다고, 거미줄로 그물을 만들어서--- ."

그만! 명치 끝이 꽉 막히고 목이 메었다. 내겐 용기가 필요해!

20080827125255_3401.jpg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이라고 시인은 표현했던가. 서러움이 크고 깊어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를 시간도 없이 후둑후둑, 미련마저 털어 내고 쉽게 떨어지는 꽃. 동백은 겨우 내내 빗 속에서 피고 지고, 피고 졌다. 하필, 차가 들고 나는 길 위의 주검,꽃들은 짓이겨져 진흙탕으로 변해갔다. 지는 모습마저 아름다워야 하거늘---. 나는 동백가지 몇 개를 잘라 유리 화병에 꽂았다. 가지를 충분히 물에 담가주면서, 혹 꽃이 필려나---, 미안하지만 피어 줬으면 좋겠다고, 너의 꿈과 낭만이 만개한 뒤엔 깨끗이 처치해 주겠노라고, 아름다움만 오래오래 기억하겠노라고 주문처럼 되뇌었다.

동백이 피었다! 가지가 잘렸다고 살짝 삐쳐서 새초롬하게 꽃잎을 벌렸다. 잡다한 세파와 비바람에 시달리지 않고 번뇌를 털어 낸 동백은 얼마나 자유롭고 홀가분한 모습인지. 빽빽한 노란 술과 꽃가루는 꿈처럼, 햇살처럼 포근하다.

20080827125353_7280.jpg


고구마나 구워 먹어 볼까? 고구마가 다 그 모양이 그 모양인데 어라, 사람처럼 생긴 놈이 있다. 정수리에는 상모 돌리는 아이처럼 긴 끈이 한 가닥 늘어져 있다. 어찌하다가 흙 속에서 이런 모양으로 태어났을까. 혹시 이 고구마는 나를 보고 싶어하던 그 누가 아닐까? 우울하고 쓸쓸할 때 상모를 돌리면서 나를 즐겁게 해주려고 내게 온 건 아닐까? 그리운 사람들, 그리운 사람들과 나누었던 매혹적인 시간들. 오래도록 고구마를 보면서 나는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이쯤에서 나는 솔직히 고백한다. 사실 소라, 동백, 고구마는 아무 관련이 없다. 당혹스러웠다면 미안하다. 정말 잡스러운 년이라고 욕해도 좋다. 나는 세상의 바다를 향해 작살을 던졌다. 낭만을 사냥했다. 서투른 솜씨로 잡아 올린 것이 소라, 동백, 고구마였다. 어느 날인가는 돌멩이, 우산, 시계가 낚길 수도 있다. 물론 그것들은 피차간에 모르는 사이다. 손길 한 번 스친 적 없다. 낚시꾼의 작살에 우럭, 스내퍼, 존도리가 아무 관계없이 줄줄이 꿰어져 있는 것처럼.

혹여, 잘 낚았노라고 격려하는 이가 있다면 용기를 내어 대답하리라. 낭만 사냥 미끼는 애정이 담뿍 담긴 눈길, 코가 시큰한 연민, 세상과 공명하는 가슴 뿐이라고. 정말이지 다른 건 없다.

ⓒ 뉴질랜드 코리아타임스(http://www.koreatimes.co.nz),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그 여자의 식탁

댓글 2 | 조회 2,804 | 2008.11.11
여행의 백미는 그 지역의 별미 음식을 맛보는 것이 아닐까? 나는 여행의 추억이 혀에 남아 있다가 주체할 수 없는 감흥으로 가끔 되살아 난다. 북경 천안문 광장 앞… 더보기

희망의 이유

댓글 0 | 조회 2,709 | 2008.10.30
침팬지의 어머니라 불리는 제인 구달(Jane Goodall)박사가 지난 18일 웰링턴 동물원에서 강연회를 가졌다. 이에 앞서 17일, TV3의 앵커맨 Campbe… 더보기

누드 비치

댓글 0 | 조회 6,653 | 2008.10.15
우리 동네 과일 가게에서, 적당히 잘 익은 키위를 고르느라 손으로 살짝 키위를 잡았다 놓았다 하던 무심한 순간이어서 그랬을까. 나는 간이 떨어질 정도로 놀랐다. … 더보기

WETA를 아십니까?

댓글 0 | 조회 2,971 | 2008.09.23
만약, 만약에 말이다. 60억이 넘는 지구인이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사라진다고 가정해 보자. 지구가 떠돌이 행성과 박치기를 해 한 순간에 공중분해 되거나, 지진이… 더보기

어깨 힘 좀 빼시죠 ? - 베이징 올림픽 유감

댓글 0 | 조회 2,643 | 2008.09.10
베이징 올림픽 기간 내내 행복하셨는지? 자유, 평등, 선의의 경쟁이 만들어 내는 명승부와 진기록, 숨겨진 이야기들에 박수 치며 감동하고 눈물 흘렸는지? 나는 불편… 더보기
Now

현재 얼어죽을 놈의 낭만!? - 2. 소라, 동백, 고구마

댓글 0 | 조회 3,751 | 2008.08.27
가스 히터가 피식피식 푸헬헬 소리를 내다가 꺼져 버렸다. 하필 억수로 비가 쏟아지고 기온이 뚝 떨어진 겨울밤이었다.가난한 잡가(작가 아님)는 손, 발, 코가 시려… 더보기

얼어죽을 놈의 낭만!? - 1. 겨울비

댓글 0 | 조회 2,874 | 2008.08.13
하늘에 해가 있기나 한 것인가. 이번 겨울은 참으로 수상하다. 비가 두어 달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내린다. 주택가 곳곳이 침수되어 대피 소동을 벌이고 폭풍우에 쓰… 더보기

[385] 제로 톨레랑스(Zero Tolerance) - Ⅱ

댓글 0 | 조회 2,208 | 2008.07.22
어떤 여자가 먹을 것을 훔치다가 걸렸다. 경찰이 여자 차의 트렁크를 열었다. 바나나, 빵, 야채 등이 박스 가득 담겨 있었다. 돈으로 따지면 3, 40불어치나 될… 더보기

[384] 제로 톨레랑스(Zero Tolerance) - Ⅰ

댓글 0 | 조회 2,670 | 2008.07.08
범죄란 '사회의 질병'이다. 질병은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다. 만약, 어쩔 수 없이 병이 발생했다면 주저없이 완치시키고, 아예 질병이 얼씬 못하도록 체질과 환경을 … 더보기

[383] 행복한 밥상을 위한 투쟁 (Ⅳ)

댓글 1 | 조회 2,247 | 2008.06.23
2년 전, 오클랜드 사이먼 스트리트의 한 건물에 큰 입간판이 걸렸다. 벌거벗은 여자가 무릎과 팔을 이용 네 다리로 서 있고 유방에는 유착기가 부착되어 있었다. 여… 더보기

[382] 행복한 밥상을 위한 투쟁 (Ⅲ)

댓글 0 | 조회 2,328 | 2008.06.10
세계 제3차 대전은 식량 전쟁이다. 대한민국은 그 전쟁 중에 이미 핵폭탄을 두어 방 맞았다. 미국산 쇠고기로 한방 맞고, 5월 1일, 미국산 유전자 변형(GM)옥… 더보기

[381] 행복한 밥상을 위한 투쟁 (Ⅱ)

댓글 0 | 조회 2,590 | 2008.05.27
미식 축구 선수였던O.J.Simson은 94년, 전처와 그녀의 동거남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지문, 혈흔, DNA, 발자국, 모발 등 CSI 수사의 모… 더보기

[380] 행복한 밥상을 위한 투쟁 (Ⅰ)

댓글 1 | 조회 2,109 | 2008.05.13
내 아들의 유아 시절, 입이 짧아 2Kg 정도 체중 미달이었다. 나는 아들과 무던히도 머리싸움을 했다. 사과, 귤 주스를 만들어 우유병에 넣고 빨게 하다가 슬쩍 … 더보기

[379] 샴 트윈(Siamese Twin)의 비극

댓글 0 | 조회 2,499 | 2008.04.22
아주 오래 전에, 그러니까 한 20년쯤이나 되었을까, 나는 신문을 읽다가 쇠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충격에 빠졌다. 1811년, 당시 태국의 이름은 '샴(sia… 더보기

[378] 타마릴로가 익는 계절

댓글 0 | 조회 2,780 | 2008.08.13
수년 전 집을 사기 위해 발품을 팔고 다닐 때였다. Open home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어느 집에 들어서는 순간, 마당 한쪽에 붉은 열매를 조랑조랑 매달고 있… 더보기

[377] 나는 걷는다

댓글 1 | 조회 2,373 | 2008.03.26
기차가 얼마나 게으름을 피웠던지,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할머니는 보따리를 이고 들고 앞장섰고, 나는 무섬증에 솜털이 보소송 일어나서 그 뒤를 … 더보기

[376] Sparkling과 100% Pure

댓글 1 | 조회 2,314 | 2008.03.11
한국 관광 홍보 영상 '코리아 스파클링'이 1월 31일, 세계 3대 영상제인 '뉴욕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양방언씨의 모던 한 가야금 연주에 전통과 현대… 더보기

[375] 성형 부작용

댓글 0 | 조회 2,303 | 2008.02.26
오랜만에 통화를 하게 된 P씨, 그녀는 얼굴에 팩이라도 붙인 듯 웅얼웅얼거린다. "일주일 됐어, 수술한지." "아이고, 조막만한 얼굴에 칼 댈 때가 어딨다고?" … 더보기

[374] 남 섬에서 만난 세 남자

댓글 0 | 조회 2,378 | 2008.08.13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머리카락, 호방한 웃음, 그가 오른 산 만큼이나 우뚝한 콧날---뉴질랜드 지폐 5달러짜리에 인쇄된 남자, 에드먼드 힐러리경이다. 그는 1953… 더보기

[373] 무진기행(霧津紀行)

댓글 0 | 조회 2,394 | 2008.01.30
무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Ⅰ. 스무살 무렵,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을 만났다. 주인공 윤희중, 그는 산업화가 막 시작된 1960년대의 전형적 인물이다. … 더보기

[372] 꽃들에게 물어 봐

댓글 0 | 조회 2,149 | 2008.01.15
요즘 나는 어쩔 줄 모르겠다. 사방에서 나를 향해 프로포즈를 하는 바람에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는 말이다. 내 집 정원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고흐의 팔레트'다. … 더보기

[371] 우연(偶然)의 선물

댓글 0 | 조회 2,198 | 2007.12.20
12월이 되면 나는 두렵습니다. 엊그제 1월이 시작됐는데 벌써 12월이라니---. 나는 어린 시절 심부름을 가다가 돈을 잃어버려 망연자실 할 때처럼 당황스럽습니다… 더보기

[370] 영혼의 지팡이(Ⅱ)-Secret Sunshine을 보다

댓글 0 | 조회 2,064 | 2007.12.11
며칠 전 도마질을 하다가 손가락을 베었다. 나는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둘둘 감았다. 다정한 이들은 내 손가락을 보고 틀림없이 위로의 말을 건넨다. “어머! 다치셨… 더보기

[369] 영혼의 지팡이(Ⅰ)-마두금 연주를 듣다

댓글 0 | 조회 2,453 | 2007.11.27
거짓말처럼, 어미 낙타의 눈에서는 닭똥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아기 낙타를 품에 들이고 젖을 물렸다. 며칠 전, 어미 낙타는 새끼를 낳았었다. 오랜 시… 더보기

[368] 하버브리지

댓글 0 | 조회 2,342 | 2007.11.12
오클랜드 하버브리지의 안전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2006 베카 엔지니어링의 보고서는 클립온(바깥 상하행 2개 차선)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Transit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