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 모든 이별의 법칙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357] 모든 이별의 법칙

1 2,100 KoreaTimes
  Y가 그 녀석을 처음 만난 것은 7년 전이었다. 녀석을 처음 봤을 때 Y는 마음이 여간 설레지 않았다. 순백의 윤기 자르르 흐르는 피부하며 아담한 몸집이 너무 맘에 들었다. Y는 몇 차례나 녀석의 앞을 기웃거리며 곁눈질을 했다. 녀석의 출신지도 맘에 들었다. 유명한 W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녀석은 하반신이 튼실해 아래쪽에 꽁꽁 얼린 고기나 낚시터에서 잡아 온 생선 등을 잘 보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Y는 녀석에게 부엌의 가장 좋은 자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헝겊으로 녀석의 구석구석을 닦아 주었다. 킁킁 냄새를 맡아보고 플라스틱 냄새가 조금 떠도는 것 같아 숯을 한 토막 겨드랑이에 찔러 넣어 주었다. 행여 김치국물이 묻거나 야채에서 더러운 흙 부스러기라도 떨어질까 봐 녀석의 갈피마다 키친 타월을 얌전히 접어 대주었다.그 뿐이 아니었다. 혹시 녀석이 지리해 할까 봐 앙증맞은 자석 고양이 다섯 마리를 녀석의 앞섶에 붙여 주었다. 머리 위에는 녀석의 품격과 잘 어울리는 도자기를 올려 놓았다. 이리 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이었다. Y는 밤늦도록 두 팔을 벌려 녀석을 안아 보기도 하고 뜨거운 숨결을 녀석에게 후우- 불어대기도 했다. 녀석이 허전해 하면 Y는 우유며 주스, 치즈, 계란, 야채 등을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살짝 녀석에게 들여놓기도 했다. 나란히 열 맞추고 색깔도 맞춰 넣어 준 세간살이를 녀석은 만족스러워하는 눈치였다.

  Y는 하루에도 수십 번 녀석과 눈을 맞췄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녀석을 바라보고 ‘안녕’ 인사하면, 녀석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화사하게 미소지었다. Y가 물을 마시기 위해 한 밤중에 녀석에게 가면 녀석은 어둠 속에서 희뿌염하게 기지개를 켜며 반가워했다. 녀석과 Y는 행복했다. 어쩌다가 이제서야 만났는지 일분 일초가 아까웠다. 누가 봐도 천생연분이었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갔다. 녀석의 피부는 점차 윤기를 잃어갔다. 앞섶은 각종 메모 쪼가리에 고지서 등으로 누더기질이 되어 있었다. 머리 위에 올려 놓았던 도자기는 간데 없고 그 곳에는 계란 판대기와 먼지가 나뒹굴었다. 세간살이는 아무렇게나 쑤셔 박혀서 녀석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녀석이 헉헉대건 말건, Y는 녀석의  속이 너무 좁고, 하반신은 돌덩이처럼 무거워 물건을 꺼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라며 불평을 쏟아 냈다. 녀석의 여기저기는 반찬 국물이 피처럼 얼룩져 있었다. 녀석의 피부는 축 늘어져서 녀석의 가장 큰 매력이었던 차가운 숨결이 그 틈새로 빠져나갔다.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놈이었니?”

  Y는 녀석의 늘어진 피부를 따귀를 치듯이 올려 붙이며 쌀쌀맞게 말했다. 녀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Y를 위해 한 번도 쉬지 않고 7년 동안 살아왔다. 뭐가 그리 바쁜지 Y는 다정한 눈길 한 번 안주고 위로의 손길 한 번 안 뻗쳤다. 녀석은 허구 헌날 한쪽 귀퉁이에 쳐박혀 외롭게 살고 있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슬퍼서 소리죽여 우는 날이 많아졌다. 몸도 여기저기 이상이 생긴 듯 했다. 그래도 Y가 다가오면 예전처럼 행복해지고 싶어 녀석은 일부러 환한 미소를 짓고, 아픈 신음과 울음을 숨겼다.

  그러던 어느 날, Y는 녀석의 바로 코 앞 식탁에서 커피를 마시며 광고전단지를 요모조모 살피고 있었다. 전단지의 갈피를 홱 넘기는 순간 녀석은 숨이 멎을 번 했다. Y는 녀석의 예전 모습보다 훨씬 근사하고 체격도 좋은 놈들에게 푹 빠져 있었다. 설마 설마 했는데,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 녀석의 온몸에서 기운이 쭉 빠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신음과 울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자 Y는 사람들에게 녀석의 흉을 보았다.

  “물이 졸졸 흐르다가 갑자기 딱 끊기기도 하고 가는 비명소리처럼 조그맣게 흐느끼기도 하다가 음계가 불안한 피리 소리도 낸다. 딱 전설의 고향 같아.” Y는 아예 녀석의 곁에 오지도 않고 새로 올 후임자만 손꼽아 기다렸다.

‘나는 더 이상 Y에게 해줄 일이 없어. 나는 이제 쉬고 싶어. ’녀석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괴로워하다가 마침내 숨을 멈추었다.

  “아니! 그새를 못 견디고 끝장을 내다니, 진작 갈아치워야 했는데---. 어쩜 좋아, 김치가 폭삭 쉬겠네.” Y는 녀석의 주검 앞에서도 김치 쉴 걱정 만 늘어놓았다.

  며칠 후, 녀석은 세간살이를 모두 빼낸 훌쩍 가벼워진 몸으로 짐꾼의 등에 실려 사라졌다. 밤에 물을 마시러 부엌에 왔던 Y는 이상하게 등 뒤가 허전함을 느끼고 몸을 돌렸다. 그 곳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이제 좀 쉬려고 합니다. 때마침 당신과의 이별이 찾아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네요. 그렇지 않다면 나는 당신을 평생 그리워하다가 그 괴로움에 명이 끊어졌겠지요. 당신의 사랑은 충분했고, 나는 행복했습니다. 당신도 그러했길---.'

  Y는 허공에 떠도는 녀석의 소리에 흠칫 놀랐다. Y는 녀석이 서 있던 자리를 눈이 시리도록 바라보았다. Y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 Y는 녀석과 행복했던 한 때가 미치도록 그리워 세차게 도리질을 쳤다.
쌔엠
왕하지님의 질책땜에 오기로 잠 참아가며 댓글을 다는데

이렇게 힘든데 그간 어찌 그리 아프단 소리 없이

때론 곱게 또 때론 격랑치듯 써 오셨어요.

가만히 다시 생각해보니 순 욕심 같습니다.

마음대로 하시되 다시 돌아오시면 참 좋겠습니다.

그럴수 없다면 너무 오래지 않으셨음 합니다.

[367] 천국의 가장자리

댓글 0 | 조회 2,002 | 2007.10.24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는? 혹은 살고 싶은 나라는? 이런 질문에 뉴질랜드는 단연 수위를 차지한다. 나도 '지상 최후의 낙원'이라는 문구에 마음이 혹했었다.… 더보기

[366] 비상 배낭 꾸리기

댓글 0 | 조회 2,591 | 2007.10.09
몇달 전, 우체통에서 'Household Emergency Checklist'라는 제목의 종이쪽지를 발견했다. 비상사태에 대비해 비상 용품을 준비해 놓으라는 것이… 더보기

[365] 봄날은 간다

댓글 1 | 조회 2,021 | 2007.09.25
욕심이 과하셨어요. 봄이 온다고 뭔들 달라지나요? 왜 설레이죠? 풍선처럼 빵빵하게 차 오르는 가슴에서 바람일랑 모두 빼내세요. 당신의 심장을 쭈그려 트리세요. 봄… 더보기

[364] 작은 연못

댓글 0 | 조회 2,011 | 2007.09.11
'깊은 산 오솔길 옆'으로 시작되는 양희은의 '작은 연못'. 이 노래처럼 슬프고 절망적인 가사를 나는 알지 못한다. 운동권에서 많이 불렀지만 작사,작곡가인 김민기… 더보기

[363] 아! 버나드 쇼

댓글 0 | 조회 2,330 | 2007.08.28
간절한 소원이 하나 있다. 아일랜드 태생의 작가인 죠지 버나드 쇼를 꼭 한 번 만나는 일이다. 깡마른 몸에 희고 긴 수염, 지팡이가 트래이드 마크인 쇼. 형형한 … 더보기

[362] 강 건너 백만장자

댓글 1 | 조회 2,067 | 2007.08.14
한국에서 부동산으로 재벌이 된 사람의 경험담 중에 '청개구리 전략'이 있다. 정책과 반대로 하니까 어느덧 부호의 길에 올랐다는 것이다. '엇박자 노래가 더 흥겹다… 더보기

[361] Art Of Korea를 꿈꾸며

댓글 1 | 조회 2,016 | 2007.07.23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 삼성이 지난 3일 아오테아 컨벤션 센터에서 쇼케이스 행사를 가졌다. 이 날 슬로건은 장인(匠人) 정신을 강조한 'Art of Sam Sung… 더보기

[360] Pumpkin Time

댓글 1 | 조회 1,936 | 2007.07.09
내집 게라지에는 가을에 사놓은 호박이 여러 덩이 있다. 생쥐 일가족은 호박을 갉작갉작 파먹으면서 행복하게 지낸다. 집 주변에서는 고양이들이 짝을 찾느라 앙칼진 소… 더보기

[359] 언 발에 오줌 누기

댓글 1 | 조회 2,486 | 2007.06.25
중국에서 온 이웃집 새댁이 햇살이 내리 쬐는 벽에 몸을 기대고 하염없이 서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웃으며 햇살이 따뜻하다고 말했다. 사연인즉 전기요금… 더보기

[358] 키위새의 운명(運命)

댓글 1 | 조회 2,976 | 2007.06.12
키위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이 제1회 You Tube Video Awards 에서 ‘가장 귀여운 영상’으로 뽑혔다. 키위새 한 마리가 날기 위해 천신만… 더보기

현재 [357] 모든 이별의 법칙

댓글 1 | 조회 2,101 | 2007.05.23
Y가 그 녀석을 처음 만난 것은 7년 전이었다. 녀석을 처음 봤을 때 Y는 마음이 여간 설레지 않았다. 순백의 윤기 자르르 흐르는 피부하며 아담한 몸집이 너무 맘… 더보기

[356] 뜨겁게 포옹하라!

댓글 1 | 조회 2,232 | 2007.05.08
뉴질랜드에서 나의 행복은 두 단어로 시작되었다. "Hello!”혹은 “Hi!” 을씨년스러운 겨울날, 몸을 잔뜩 웅크리고 식빵을 사기 위해 총총 걸어가고 있을 때,… 더보기

[355] 해는 지고,해는 뜨고

댓글 1 | 조회 2,194 | 2007.04.24
〈DIASPORA를 위하여〉 가끔은 우리가 땅 위를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물 위를 떠돌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어서 빨리 오라고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급히 서… 더보기

[354] 나무 감옥에 갇히다

댓글 1 | 조회 2,185 | 2007.04.11
내가 사는 동네는 사람보다 나무가 더 많다. 아름들이 나무들이 동네 입구부터 즐비하고, 집집마다 형형색색의 나무들이 문패처럼 세워져 있다. 한 걸음 더 들어가면 … 더보기

[353] 낭만벼룩

댓글 1 | 조회 2,226 | 2007.03.27
스무살 때, 나는 영문학도를 소개받은 적이 있었다. 그가 첫 대면한 자리에서 불쑥 때밀이(일명 이태리)타올을 내밀었다. “영국 시인 존던의 시 중에 ‘벼룩’이라는… 더보기

[352] 달(月)에 부치는 노래

댓글 1 | 조회 2,259 | 2007.03.12
바닷가에서 음력 대보름을 맞았다. 3월 첫째 주말 밤이었다. 남편은 갯바위에서 낚시를 하고 나는 제일 높은 바위 꼭대기에 앉아 달 구경을 하였다. 휘영청 큰 달이… 더보기

[351] 너나 잡수세요!

댓글 1 | 조회 2,549 | 2007.02.26
돼지 리오와 소 무피우스가 주연으로 나오는 만화 영화를 보았다. 영화 매트릭스(MATRIX)를 패러디한 미트릭스(MEATRIX)가 바로 그것. 무피우스는 리오에게… 더보기

[350] 내 친구들은 어디에?

댓글 1 | 조회 2,227 | 2007.02.13
바지를 걷어올리고 강물을 따라 걸어간 적이 있다. 강 바닥의 까칠한 모래가발바닥을 할퀴고,모난 돌은 송곳처럼 뒤꿈치를 쪼아댔다. 가끔은 깨진 유리 조각이 피부를 … 더보기

[349] 향기(香氣)를 찾아서 - 기억(Ⅱ)

댓글 1 | 조회 2,305 | 2007.01.30
"내가 수면제를 먹고, 땅 속에 들어가 누우면 그 위에 흙을 덮어 주시겠소?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이란)의 ‘체리 향기'(1997년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는… 더보기

[348] 향기(香氣)를 찾아서 - 기억(Ⅰ)

댓글 1 | 조회 2,339 | 2007.01.15
향기는 언제나 내 주변에 가득하다. 바람 따라 허공의 이곳 저곳을 떠돌기도 하고 가라앉아 있기도 하다가 소용돌이 치다가 내 코 속으로 기어드는 것이다. 우연히, … 더보기

[347] 나는 바다로 갔다

댓글 1 | 조회 2,124 | 2006.12.22
낯선 풍경들이다. 비릿한 내음도, 짭쪼름한 바람도 풍겨 오질 않는다. 파라솔을 펴 놓고 멍게나 해삼, 소라 등을 파는 아주머니도 없다. ‘어쩌란 말이냐, 어쩌란 … 더보기

[346] 천국을 한 병씩 나눠 드립니다

댓글 1 | 조회 2,489 | 2006.12.11
시인 바이런이 말했던가. ‘와인과 모짜르트와 책이 있는 곳이 천국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세계적 와인 수출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이곳 뉴질랜드가 천국임에 틀림없다.우… 더보기

[345] 황혼이 아름다운 이유(Ⅱ

댓글 1 | 조회 2,049 | 2006.11.27
내 나이 네 살 때였어. 할머니가 머리카락을 잘라서 파셨어. 아마 검은 머리가 값이 더 나갔었나봐. 비녀 속에 숨어 있는 검은 머리를 찾아내서 무쇠 가위로 싹둑 … 더보기

[344] 황혼이 아름다운 이유(1)

댓글 1 | 조회 2,070 | 2006.11.13
“그게 어디 있더라?” 남편이 마치 현 진건의 ‘빈처’처럼 중얼거린다. 나는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져 온다. 또 시작되었구나. “분명히 여기 둔 것 같은데---.”… 더보기

[343] 식물의 사생활(2)---넌 어느 별에서 왔니?

댓글 1 | 조회 2,427 | 2006.10.24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ET를 떠올려본다. 눈이 얼굴의 전체를 차지할 만큼 크고 주름투성이인 ET가 긴 손가락을 내밀어 인간의 손가락과 조우하는 순간, 지구인들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