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 받은 축복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뉴질랜드에서 받은 축복

0 개 5,999 NZ코리아포스트
외국에 나와 산다는 것이 생각했던 것 보다 쉽지 않다는 것은 모국을 떠나 외국 생활을 몇 년 이상 해본 사람들이라면 공통적으로 느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요즈음은 한국 경제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뉴질랜드의 경제도 어려워서 많은 교민 분들이 힘든 시기를 함께 겪고 있기에, ‘내가 뉴질랜드에 살면서 어떤 복을 받고 살아가는가?’를 생각해 본다는 것은 조금은 사치스러운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힘들고 어려울 때 그 동안 내가 받아 누려온 복들을 세어볼 수 있다면, 이 어려운 시기를 시기와 질투, 원망과 불평 없이 잘 넘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처음 뉴질랜드로 이민 올 때, 뉴질랜드에서는 영어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생각은 이웃집에 살던 한국 학생이 영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았을 때 여지 없이 무너져 버렸다. 그러면서 시작한 ‘뉴질랜드에서 영어 가르치기’는 영어 때문에 고통을 겪는 학생들에게 희망의 빛을 찾도록 도와주는 타인을 위한 일이기도 했지만, 현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과정 중에 스스로 많은 것을 배우게 해주기도 한, 나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영어에 대한 지식은 충분히 얻을 수 있었지만 그 영어가 담겨져 사용되는 문화에 대한 이해가 충분치 않았었다. 그러나 뉴질랜드에 살면서, 또 뉴질랜드 출신의 작가가 쓴 문학 작품들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언어는 그 언어가 사용되는 문화 속에서 완전해 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예를 들면, 학생시절 한국에서 한국말로 읽었던 뉴질랜드 출신의 작가 Katherine Mansfield의 ‘Garden Party(원유회)’라는 작품을 뉴질랜드에서 영어로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 그 소설 속에서 묘사하고 있는 ‘가든 파티를 하기에 완벽하고 아름다운 날씨와 아름다운 꽃들’에 대한 이야기는 그저 상상 속에서나 느낄 수 있는 이국적 풍경이 아니라, 내가 직접 느끼고 체험하고 있는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날씨와 꽃들과 바람들이 되었다. 전에 살았던 Stanmore Bay의 Vipond Road에는, 바다 풍경이 보이는 왼쪽으로는 어마어마하게 크고 아름다운 집들이지만 바다 풍경이 보이지 않고 골짜기 밑으로 연결되는 오른 쪽으로는 낡고 초라한 집들이 늘어 서 있었다. 그래서 가든 파티의 어린 여자 주인공인 Laura가 커다란 정원을 갖고 있는 자기 집을 떠나, 골목길을 내려가 후미진 곳에 있는, 죽은 마부의 집으로 문상 가는 장면을 읽을 때는, 그 집으로 내려가는 길이 마치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한 모퉁이를 보고 있는 듯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래서 한국에서 이 작품을 읽었을 때 보다 더 깊이 있게 작품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은 필자가 뉴질랜드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얻게 된 축복 중에 하나다.

뉴질랜드에서 받은 또 다른 축복은 흙과 친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손에만 들어오면 식물들이 다 죽어버린다고 아예 화초 조차도 사지 않았었지만, 여기서는 텃밭이나 정원에 올라오는 잡초들을 맨 손으로 뽑다가 손톱 밑이 새까맣게 물들어 버리기도 하고, 과일 나무들이 건강하게 자라 과실을 많이 맺으라고 유기농 비료인 양의 배설물 말린 것을 밭에 묻어 주기도 한다. 또한 정원에 심어놓은 작은 수선화 알뿌리들에서 봄이면 꽃대가 쑥쑥 올라와 그 끝에 봉우리가 맺히고, 매일 조금씩 꽃으로 피어나는 것을 보는 것도 뉴질랜드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다.

그 외에도 뉴질랜드에서의 생활은 나에게 새로운 음식에 대한 눈이 열리는 축복을 가져다 주었다. 한국에서는 케익을 얼마나 예쁘고 정성스럽게 만들어지는지, 만드는 과정 중 작은 실수를 하나라도 하면 그 케익을 망쳐버리게 되고는 했었다. 그러나 5분내지 10분 안에 뚝딱 만들어 오븐에 넣으면 끝나는 너무 간편한 뉴질랜드식 케익 굽는 방법들은 필자에게 새로운 미각의 세계를 탐험해 볼 용기를 주었다. 또한 여러 나라들에서 온 뉴질랜드 사람들과 섞여 살면서 여러 가지 다른 나라 음식들을 접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그들에 대한 이해도 그만큼 다양해지고 넓어졌을 것이다.

빠르게 발전하는 한국사회에서 영원히 뒤쳐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한국에서만 살았다면 깨달을 수도 없고 누릴 수도 없었던 많은 것들이 축복으로 주어졌으니, 어려운 시기가 지나가도록 감사하면서 잠잠히 세월을 보내는 것도 그 다음에 다가올 또 다른 세계를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을까 한다.

ⓒ 뉴질랜드 코리아포스트(http://www.koreapost.co.nz),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게시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