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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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비밀

0 개 2,362 이동온

변호사가 지켜야 할 근본적인 덕목과 윤리 중 수위를 다투는 항목이 의뢰인에 대한 비밀 엄수이다. 모든 변호사는 의뢰인과 변호사의 관계 안에서 알게 된 의뢰인의 모든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지 말아야 하는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

이 비밀 엄수의 책임은 의뢰인과 변호사의 관계가 종료 된 이후에도 계속 지속 되는데, 의뢰인의 업무가 종결된 후에도, 비밀 엄수의 책임은 계속 유지 된다. 의뢰인이 업무 도중 다른 변호사를 선임하여 더 이상 기존 변호사에게 일을 맡기지 않아도 기존 변호사는 그 의뢰인과의 관계로 인해 알게 된 정보를 누설할 수가 없고, 그 의뢰인의 사후에도 그 고객의 정보는 비밀이 유지 되어야 한다.

고객의 비밀이라는 것이, 그 고객의 자산 내역일 수도 있고, 새로 만든 유언장의 내용일 수도 있다. 상업적 계약 관련 일이라면, 계약의 내용이 비밀로 지켜져야 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해당 고객이 변호사의 고객이라는 사실 조차 기밀이 유지 되어야 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

간혹 변호사가 의뢰인으로부터 얻게 되는 정보 중에는 스케일이 다른 정보가 있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변호사 사무실에 한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이 의뢰인은 변호사의 기존 고객은 아니었지만 변호사와 상담을 요청하고, 이 의뢰인은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고백하게 된다. 이때 변호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물론 의뢰인의 말이 거짓 일수도 있으니 상황을 살펴보고 판단해야 하겠지만, 만약 의뢰인의 고백이 신빙성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할까 아니면 살인의 수사를 촉구해야 할 것일까? 경찰에 연락을 한다면 익명으로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의뢰인의 정보까지 밝혀야 할 것인가. 

변호사가 의뢰인으로부터 얻게 된 모든 정보는 설사 그것이 살인이라는 중죄의 시인이라 할지라도 비밀이 지켜져야 한다. 그렇다면, 의뢰인이 시인한 살인의 용의자로 엉뚱한 사람이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그 재판에서 유죄가 선고되어 무고한 사람이 처벌을 받게 된다면 그때에도 변호사는 의뢰인의 비밀을 지켜야 할까?

뭐 그런 드라마 같은 일이 있으려고, 하고 웃어 넘기는 독자도 있겠지만, 이는 실제 1969년에 스코틀랜드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노부부의 집에 강도가 들어, 노부인이 사망하게 되는데, 이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패트릭 미한이라는 사람이 유죄를 선고 받고 징역을 살게 된다. 

세상은 나중에야 알게 되지만, 실제 범인은 미한이 아닌 윌리엄 맥기네스라는 사람이었고, 맥기네스는 자신의 변호사에게만 살인을 시인하게 된다. 맥기네스의 변호사는 자신의 의뢰인이 범인이라는 것을 알기에 미한이 억울하게 살인범으로 지목 되었음을 알게 되지만, 의뢰인의 비밀 엄수라는 책임에 얽매여 당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만약 맥기네스의 변호사가 끝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미한은 평생 살인범으로 남게 되었겠지만, 맥기네스의 변호사는 그의 사후에 맥기네스가 실제 범인이었음을 알리고, 미한의 구제에 힘을 쏟게 된다. 

맥기네스의 변호사는 맥기네스가 살아 있는 동안은 비밀을 지켰지만 맥기네스의 사후에 그가 실제 범인이었음을 알림으로써, 의뢰인의 비밀 엄수의 책임을 어기게 되었고, 이는 의뢰인에게 소송을 당할 수도, 그리고 변호사 협회의 고발을 통해 변호사 면허가 박탈 당할 수도 있는 큰 과실이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정의’라는 큰 시각으로 상황을 판단하여, 일단 미한을 사면하고 맥기네스의 변호사를 딱히 처벌하지 않는다.

패트릭 미한 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변호사의 의뢰인에 대한 비밀 엄수 원칙의 해석에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보수적인 뉴질랜드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아마 다른 결과가 나올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어찌되었건 의뢰인에 대한 비밀 엄수는 법과 변호사를 지탱하는 큰 디딤돌이고, 의뢰인의 비밀은 변호사에겐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비밀로 남아야 할 것이다.
 

법무장관 - 검찰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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