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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주후식(先酒後食)

조병철 0 1,409 2013.08.14 17:14
인류가 발견한 가장 오래된 기호식품,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는 독특한 음식 바로 술이다. 서민들의 밥상에도, 나라간의 정상외교의 만찬에도, 시중잡배의 의기투합의 자리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교의 명약으로도 유명하다. 일반인들 사이에 건강에 해롭다 이롭다 논쟁이 끝없이 이어지지만 누구도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나라의 법으로 금주(禁酒)를 시행한 수많은 우여곡절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나, 오늘날에도 술산업은 번창하며 그 비중을 높여 나가니, 아마도 술에는 다른 음식에서 찾아보기 힘든 특별한 효용이 있어 보인다.
 
젊은 학창시절에는 친구와 함께 떠들기를 좋아해서 맥주 집에 자주 들렀었다. 한 친구는 술을 무척 좋아했는데, 맥주의 첫 잔을 단숨에 들이킬 것을 주문했다. 목젖을 통해서 넘어가는 맥주의 시원 맛이 일품이라는 설명이다. 그래서 친구는 첫잔은 단숨에 들이키곤 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시원한 맥주가 위 속에서 퍼지는 짜릿한 쾌감이 친구의 이런 행동을 부추기지 않았나 생각된다. 빈 속에 맥주가 들어가서 주는 기분 좋은 화끈한 느낌말이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빈속에 갑자기 술을 마시는 것을 경계해 왔다. 안주가 없이는 술 마시는 것을 피했으며, 안주가 풍성한 술상은 술을 찾은 모든 이의 즐거움이다. 그리고 안주로 적당한 음식은 반드시 술을 불러내곤 한다. 또한 농촌에서 봄철 모내기, 여름철 보리타작 같은 힘든 농사일에는 농주로 불리는 술이 등장해서 어려운 노동을 달래곤 해왔다. 현대의 산업사회에서도 이런 현상은 사라지질 않고 계속된다. 술의 힘을 빌려 힘든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면서 작업 능률을 올려왔다. 어떤 때는 빈속에 술로만, 어떤 때는 안주로 지칭되는 음식과 함께. 그러면서 ‘술도 음식’이라는 말로 음식과 같이 지나치게 탐하지 말 것을 일러왔다.  

포도주 문화가 먼저 발달한 프랑스의 경우 음식과 함께 하는 술 이야기를 살펴본다. 그들의 정통 식사에는 반드시 와인을 함께한다. 먼저 가벼운 앙트레에는 드라이한 백포도주 한잔으로 식욕을 자극한다. 다음은 좀 느긋하게 푸짐한 메인 요리가 나올 차례다. 여기에는 적포도주를 곁들이는 게 품격 있는 식사로 간주한다. 이 때는 개인의 주량이나 그 날의 기분에 따라 한 잔이 두 잔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식사를 마무리하고는 디저트와 함께하는 약간은 달콤한 와인으로 입가심을 한다. 이를 디저트 와인으로 부른다. 물론 여기서 취기를 조절할 의향 이거나, 카페인 음료를 즐기는 사람은 차나 커피로 대신할 수도 있다. 이렇게 두 사람이 식사를 마치는 데는 한 병 정도의 와인이 소요된다. 프랑스 와인은 식사와 함께 대화를 나누며 길게 이어지는 술 문화로 요약된다. 
 
영국은 위스키 제조에 있어 원조임을 자랑한다. 일찍부터 보리 호밀 옥수수 같은 곡류를 원료해서 위스키를 만들었다. 그러면 이들은 위스키를 어찌 즐기는가?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흥미로운 것은 저녁 식사와 함께하는 위스키 한잔이 그들 집안의 전통으로 내려온다. 아프리카 침팬지 연구로 저명한 구달박사의 집안도 이 전통을 지킨다고 말한다. 위스키가 반주(飯酒) 문화로 정착한 사례로 보인다. 반주문화는 한국에서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양반 밥상에 반주가 빠질 수야’ 하는 술을 부르는 말과 함께. 그렇다 반주를 즐길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런 전통은 대를 이어 내려온다. 
 
그러면 각종 경전에서는 왜 술을 멀리 하도록 기록하고 있는가. 아마도 술이 술을 부르는 집요한 습관성을 간파한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두뇌는 너무나 영리해서 작은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술이 주는 안락함을 추구하려 할 뿐 아니라, 보다 더 강력한 다른 자극을 찾게 되기 때문이리라. 이러한 경전의 글귀가 무색하게 술과 함께 생활하려는 사람의 수는 줄지 않고 늘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짜릿한 술맛을 최고로 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식사와 함께 특별한 음식으로 즐기면서 여유를 부리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는 술 문화가 너무나 깊숙이 자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인의 취향이나 체질보다는 그 사회의 술 문화에 빠져 들기 십상이다. 술이 뭔지 모르는 어린이는 부모의 술 습관으로 이들의 뇌리에 술 문화가 각인된다. 그러면서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술독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술독에서 헤엄치면서, 또한 한두 번은 그 속에 빠지기도 한다. 일찍이 한국의 시인 조지훈은 ‘주도(酒道) 18단계’를 분류하면서, 낙주(樂酒)를 주성(酒聖)으로 높은 자리에 놓았다. 이제 디저트 와인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과 입가심으로 삼차를 찾아다니는 취객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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