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딸내미가 건축회사에 다닐 때 급료를 받으면 다 써버린다고 아내는 항상 걱정을 하였다.
“여보 쟤도 이제 돈을 좀 모아야 되는데 월급 받는 대로 다 써버리니 어떻게 하면 좋아, 직장이 좋으니 대출받아 집을 사라고 하면 어때? 이자, 원금 갚아나가면 쓸 돈도 없을 테고... 당신이 집 사라고 말해봐,”
“아, 돈 한 푼 안 모은 애가 무슨 집을 사?”
돈을 잘 쓰는 딸내미도 집은 사고 싶었는지 싼 집이 나왔다고 같이 보러가자고 하였다.
“여보, 아주 계약을 하고 와요, 이번 달부터 월급 받으면 못 쓰게,”
가보니 동네도 안 좋은 판자 집이라 팔 때도 힘들 것 같아 머리를 흔들고 돌아왔는데 아내는 계약을 안 하고 왔다고 투덜거렸다. 밥 먹을 때마다 아내는 딸에게 집을 빨리 사라고 몰아붙이는데 보다 못한 내가 그만 이런 말을 하고 말았다.
“내가 한국 가서 돈 좀 가져오면 몇 만 달러 무이자로 빌려줄 테니 그때 집을 사거라,”
아내의 성화 때문에 얼떨결에 괜한 말을 했다 싶었지만 그래도 약속이니 한국에 다녀온 후 돈을 빌려줬고 딸은 좀 나은 집을 살 수 있었다.
지난주 아이들이 한국식 삼겹살을 사와 오랜만에 삼겹살에 술을 맛있게 마
시는데 아내가 술맛이 뚝 떨어지는 말을 하였다.
“여보, 술도 지금부터 반병으로 줄이면 어때?”
“이번에 뭐? 목말 태워준다고 말하려고... 얘들아, 네 엄마가 담배 반 갑으로 줄이면 매일 업어준다 했는데, 담배 줄인지 한 달 넘었지만 한 번도 업어준 적이 없다.”
“엄마~ 왜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고 그래,”
“그냥 한말이지... 돼지 같은 네 아빠를 이 연약한 몸으로 어떻게 업어 주냐,”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지, 돼지 얘기 나온 김에 아빠가 얘기 하나 해 주마, 옛날 시골에 가난한 부부가 살고 있었다,”
땅 한마지기 없이 살다보니 남의 땅을 조금 빌려 농사를 하는데 가물어 농사도 안 되었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제대로 못 먹여 늘 가슴 아팠다. 아이들에게 일시키기도 미안해 일을 시킬 때마다 다음에 돼지 잡아준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거짓말인줄은 알지만 그래도 맛있는 돼지고기 상상을 하며 일을 하였단다. 추운 겨울날 땔감이 다 떨어져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나무 좀 많이 해 와라, 돼지 잡아 줄 테니,”
또 무심코 내뱉은 엄마의 말이었지만 아이들은 돼지고기 상상을 하며 나무를 한 짐씩 해 왔다. 나무를 내려놓고 힘없이 털썩 주저앉는 아이들을 바라보던 아버지가 갑자기 칼을 들고 돼지우리로 가는 게 아닌가, 엄마가 깜짝 놀라 따라가 보니 아버지는 정말 돼지를 잡고 있었다.
“여보, 당신 지금 뭐하는 거요?”
“당신이 애들에게 돼지 잡아 준다고 수십 번이나 말했잖아, 오늘은 약속을 지키자고~”
“아이고, 안돼요. 땅주인이 돼지 키워서 밀린 소작료 내라 했는데, 여보 그냥 애들이 안쓰러워 한말인데... 그치 얘들아~, 엄마 말이 거짓말이란 걸 알지?”
“예, 알아요. 아버지 돼지 잡지마세요. 저희들 고기 안 먹어도... 돼요.”
아버지는 두 눈이 충혈 되어 말씀하셨다.
“그래도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
엄마는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고 고기를 자르는 아버지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날 밤 그들은 울면서 돼지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그 후, 돼지를 잡아먹었다고 동네에 소문이 났고 땅주인이 하인을 데리고 와 아버지에게 욕을 해대며 몽둥이로 두들겨 팼다, 소작료 안내려고 돼지 잡아먹은 나쁜 놈이라고, 그 뒤 아버지는 병원도 못가고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죽은 아버지를 붙잡고 대성통곡을 하였다. ‘여보, 제가 잘못했어요, 얼른 일어나세요.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한 제가 나쁜 년 이예요. 여보, 얼른 일어나세요, 흑흑흑~’
“근데 네 엄마는 어디 갔냐? 이 좋은 얘기를 끝까지 안 듣고... 그 후 아이들은 약속은 꼭 지켜야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가슴에 맺히고 맺혀 약속을 칼같이 지키며 살아가다보니 훗날 모두 대성공을 했다고 한다. 나도 너희들에게 약속을 지키며 살아왔으니 앞으로 너희들도 대성공 하리라 믿는다.”